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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탠디를 신지 말아야 할까. 얼마 전부터 시작된 고민이다. 심플하고 적당히 세련된 디자인, 편안한 착용감, 애프터서비스가 좋아 애용하던 브랜드다. 여름이 되면 탠디 샌들을 구입했고 가을이면 춘추용 구두를 샀다. 20여년 전부터 나름 충성도 높은 단골이었다. 올여름도 더위가 시작되면서 블링블링한 샌들을 사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얼마 전 뜻밖의 뉴스가 들려왔다. 탠디 구두를 만드는 제화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는 거였다. 8년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공임 때문이었다. 보통 30년, 길게는 40년간 구두를 만들어온 50~60대 장인들이 받아온 공임은 한 켤레당 6500~7000원에 불과했다. 백화점과 아웃렛 매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 반짝반짝 빛나던 예쁜 샌들과 구두들이 비틀어진 관절, 못 박힌 그들의 손과 겹쳐져 떠올랐다. 며칠 전 눈여겨봐둔 아웃렛 매장의 샌들은 20만원 가까운 가격대였다. 싼 것은 10만원 중반대, 30만원대를 호가하는 것들도 있다. 재료비와 유통마진, 영업비 등을 대강 생각해봐도 값을 지불하는 소비자로서 수긍하기 힘든 공임이다. 실상을 몰랐으면 모를까, 더 이상 맘 편히 샌들을 사지는 못할 것 같았다.

신문에 난 칼럼에 눈길이 갔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쓴 ‘대한항공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홍 교수는 ‘땅콩회항’에 이어 ‘물컵갑질’에 이르는 회장 일가의 행태로 대한항공의 오랜 고객으로서 이별을 고했다. 더 이상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반세기 가까운 고객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자 압박이다.’ 1972년부터 시작해 46년된 고객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한항공 마일리지만 해도 10만2494점. 그것마저 깨끗이 포기한다고 했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슬쩍 나의 마일리지를 체크해보니 7만2318점. 포기가 쉽지는 않다. 그나마 샌들은 마일리지가 없어 다행 아닌가. 혼자서 불매를 각오했다.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사면 될 일이다.

한 달 넘게 파업에 들어갔던 탠디 제화노동자들은 공임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후 해당 제화업체의 본사에 찾아가 16일간 점거농성을 했다. 그들 대개는 난생처음으로 ‘데모’ ‘농성’이라는 것을 해봤다. 회사는 건물을 폐쇄하며 맞서다가 지난달 10일 저부(신발 밑창)와 갑피(신발 겉가죽)의 공임 단가 각각 1300원 인상을 약속하며 타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제 맘 편히 샌들을 살 수 있으려나 생각하던 차에 알게 됐다. ‘그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서울 성수동에서 일하는 구두장인을 아빠로 뒀다는 딸이 글을 올렸다. ‘몇 달 전부터 아빠께서는 (정당한 공임요구를 위해) 거리로 나가고 있다. 아빠는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나가서 일이 많을 때에는 밤 12시에도 온다. 쉬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가지고 오시는 월급이 항상 적으신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저시급에도 못미치는 공임비 5500원…. 얼마나 불공정한 삶을 사신 분들이 많은지, 최저시급도 안 지켜지는 알바보다 못한 노동자의 삶이 있다….’

성수동에도 유명 브랜드의 구두를 만드는 제화노동자들이 있다. 그들 역시 낮은 공임과 고용보험 부재, 장시간 노동 관행, 불량제품에 대한 비용 전가, 업체가 고용하는 노동자와 같지만 책임을 떠안는 소사장제(개인사업자) 등 불공정한 환경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5일 본드와 가위, 망치를 내려놓고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 중 한 명과 지난 밤 전화통화를 했다. 동료들과 술 한잔을 했다는 이근동씨(61·가명)는 십대 때부터 이 일을 시작해 47년간 해왔다. 그러는 동안 결혼을 하고 두 딸을 키웠으며, 큰딸은 시집도 보냈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일은 놓았지만 그의 손마디는 지난 세월을 기억하는 듯 아침마다 통증을 일으키며 그를 깨운다.

“성수기인 3~4월, 10~12월 하루 16시간에서 18시간을 일했어요. 본드 냄새가 지독하고 작업환경이 아주 안 좋아요. 그렇게 일해 많이 받으면 300만~320만원까지 벌어요. 일이 없을 때는 50만원, 100만원도 벌지요. 토요일까지 일해서. 나는 갑피 작업을 했어요. 내 딸들은 백화점 가서 사주지 못했지만 길에 다니다가 내가 만든 구두를 신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았는데…. 이젠 억울한 마음에 화가 나요. 기계가 일하는 세상이 된다고 우릴 괄시하는 건지, 구두는 100% 기계로 만들지 못해요. 가죽을 다루니까 반드시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죠. 사람 손이(허허).”

꼭 그들이 노동한 만큼, 시간을 들인 만큼, 손마디가 고통받은 만큼, 가족과의 시간을 내준 만큼, 인생을 내건 만큼. 우리 사회가 수많은 그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줄 수 있을 때, 샌들을 사고 싶다.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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