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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회가, 아니 온 시민의 일상 속에서 치열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가치를 신봉하는 세력 간 다툼이 마치 ‘신들의 전쟁’(막스 베버)처럼 화해 불가능할 정도로 격렬하다. 좋고 싫은 것이 그리 강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해하게 된 나이인지라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영화나 볼까 했지만 DMZ 국제다큐영화제로 발길을 돌렸다. 정치색 짙은 작품 두 편을 골랐다.
<사마에게>. 아랍의 봄 시절, 시리아 내전의 혁명도시 알레포를 지키기 위해 6년을 싸운 대학생 와브와 남편 함자, 동지들의 다큐멘터리다. 사마는 와브와 함자의 딸이다. 시리아 내전은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반독재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2011년 3월 시작됐다. 오로지 혁명만 생각했던 대학생 와브는 러시아군 참전으로 폐허가 된 알레포에서 ‘혁명은 떠나지 않는 것’이라 믿으며 항전을 이어갔다. 와브는 내전 중 혁명지도자인 함자와 결혼하고 딸 사마를 낳았다. 와브와 함자는 사선을 넘나드는 공포 속에서 딸 사마를 보며 삶의 이유를 얻는다. ‘혁명은 떠나지 않는 것’이라 다짐했던 와브는 알레포를 떠나면 공습하지 않겠다는 아사드 정권의 선전포고(정확히 유엔 중재)로 결국 짐을 꾸린다. <사마에게>는 세상과 단절된 알레포의 6년을 와브가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실패한 혁명이지만 와브는 딸 사마가 알레포의 항전을 기억하길 바라며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하나 더, <그림자꽃>. 평양시민 김련희씨 이야기다. 련희씨는 간 치료를 위해 2011년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 비싼 의료비 때문에 고민하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브로커 말에 속아 한국행을 택한다. 그런 련희씨를 국가정보원은 간첩으로 기소했고, 법무부는 보호관찰 대상자로 가뒀다. <그림자꽃>은 기존 탈북자 영화와 달랐다. 련희씨는 “나는 탈북자가 아니라 평양시민” “왜 남한 사람들은 노후 연금을 붓고, 집 살 걱정을 하지”라고 말한다. 중간중간 북한에 있는 련희씨 가족들도 등장했다. ‘평양시민’이라는 것만 빼면 일하러 외국에 가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착각할 정도였다. 남한에 온 뒤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북한으로 보내달라는 련희씨의 절절한 호소는 계속된다. 검찰은 련희씨 집으로 매달 출국금지 연장을 통보하는 서류를 보낸다.
시리아 독재정권은 비밀경찰을 동원해 저항세력의 싹을 자르고, 군과 강대국을 앞세워 시민들의 심장에 포탄을 쐈다. 대한민국 법무부와 검찰은 한 달을 주기로 련희씨를 출국금지 대상자로 낙인찍었다. 두 다큐멘터리 모두 공권력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생생하게 전한다.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때마침 검찰개혁 문제가 공론화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호랑이 등에서 먼저 내려오는 쪽이 질 수밖에 없는 거대한 싸움이 시작되면서다. 생전 검사 한번 만날 가능성 없는 시민들마저 검찰개혁을 말할 지경이 됐으니. 언제 내 집이 11시간 압수수색 당할지 모르고, ‘의혹’만으로 70여곳이 털릴 것이라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군부 정치가 사라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뒤 수십년간 군림해 온 검찰. 대통령은 탄핵으로 심판이라도 당하는데,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양손에 쥐고도 견제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검찰개혁이 다른 개혁과제보다 더 어려운 이유이다. 개혁 우선순위를 놓고 권력 축소와 정치적 중립 문제가 여전히 충돌한다. 이번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 검찰의 위력도 보였다. 국회 인사청문회날 소환조사 한번 없이 정경심 교수를 기소하고, 대통령 방미 첫날 자택 압수수색을 감행한 것이다.
대통령이 선언한 이상 조 장관 거취 문제는 일단락됐다. 검찰개혁 명분을 쥐는 수밖에 없다. 조 장관은 검찰개혁을 다짐했지만 지금까지도 무엇을 위한 개혁을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수사만 해야 할 검찰은 정치를 하고 있는데, 정치를 해야 할 법무부 장관은 개혁 대상인 검사들과 대화하고 있다니. 3번 수사에도 무혐의 처분받은 김학의 성범죄 사건,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의 정규직 고용 문제. 하나같이 재수사 의지가 필요하고, 대책이 시급한 현안 아닌가.
지난 28일 서울 서초동 검찰 타운을 밝힌 150만 촛불(주최 측 추산)은 검찰개혁의 물꼬를 열었다. 촛불은 조 장관에 대한 분노를 불러왔던 젊은 세대들의 불공정, 불평등이란 화두도 다시 살려내야 한다. 강남 사거리 김용희씨의 철탑 고공 농성장도 밝혀야 한다. 장엄한 행진 속에서 비교정치학의 오랜 화두를 생각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킬 것인가.’ 어쩌면 이 촛불의 종착지는 국회가 될지 모르겠다. ‘지키는 자’들의 전횡을 막으려면 국회, 일하라.
<구혜영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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