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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요즘 여권이 돌아가는 모습은 정상적이지 않다. 국정의 주요 축인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여당을 대신해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권을 공격하며 정치 전면에 섰다. 대통령 최측근의 행보는 여당 대표보다 도드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에 열린 공간은 넓지 않아 보인다. 막말과 퇴행적 행태로 일관하는 한국당은 논외로 치더라도, 최근 여권을 지켜본 단상은 이렇다. 

청와대는 최근 작심하고 한국당과 대립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야당 상대는 여당의 몫인데도, 국회를 담당하는 청와대 정무라인이 연이틀 전면에 섰다. 강기정 정무수석은 12일 민주당·한국당 정당해산 청구를 요구한 국민청원에 “총선까지 기다리기 답답하다는 국민의 질책”이라고 했고, 복기왕 정무비서관은 13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요구한 국민청원에 대해 “국회의원만 견제받지 않는 나라가 특권이 없는 나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인가”라고 했다.    

국회 파행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것일 수 있지만, 청와대의 잇단 발언은 국회 정상화 협상을 주도하는 여당 지도부에 타격을 입혔다. 강 수석은 14일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찾아 “소통이 부족했다면 더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야당을 궤멸 대상, 심판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한국당 심증은 더 굳어졌다. 한국당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정무감각이 결여된 것이다. 만약 한국당 주장대로, 두 사람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이라면 그건 더 심각하다. 고위 공직자가 국정보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행보는 여당 내부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는 지난 5월14일 첫 출근길에 문 대통령과 연락했느냐는 물음에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면서도 “이심전심”이라고 했다. 이전 정권의 대통령 측근이라면 속사정이야 어떻든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에서 말을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양 원장은 굳이 “이심전심”이라는 말을 꺼냈다. 이후 민주당 지도부의 언행보다 ‘대통령 최측근 양정철’의 일거수일투족에 여권 안팎의 시선이 쏠리는 상황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28일 (출처:경향신문DB)

행보도 거침이 없다. 그는 국가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과 공개 회동했고, 전국을 돌며 유력 주자인 광역단체장들을 만나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민주연구원과 전국 광역지자체 연구원의 업무협약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여권에서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서훈 국정원장과도 만났다. 사적 만남이라는 해명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간의 행보 탓에 이 만남은 실체보다 더 큰 논란을 초래했다. 민주연구원을 ‘총선병참기지’로 만들겠다는 그의 일성은 ‘연구원 주도의 물갈이’가 있을 거라는 여권 내부 웅성거림을 키웠다.   

작금의 상황들이 반복되는 한 여당 위상은 갈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다. 설사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권위와 신뢰성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야당은 국회가 교착될 때마다 청와대만 바라볼 것이다.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 측근의 그림자에 묻히는 상황도 심상치 않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이전처럼 정치적 파급력이 없고, 오로지 독한 말로 한국당을 공격할 때 인용될 뿐이다. 의원들은 사석에서 이 대표의 말이 아닌 양 원장이 던진 발언들에 대한 독해를 시도할 정도다.   

물론 이런 상황은 민주당이 자초했다. 대통령 지지율에 업혀가느라,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 청와대 심기만 살폈다. 개각 참사에 청와대의 안일한 현실인식에도 용기 있게 직언한 사람은 없었다. 양 원장 행보에 대해서도 뒤에서 수군거릴 뿐 누구도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못한다. 여당 관계자는 “누가 지금 양비(양 원장)를 말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수 의원들은 한국당의 비정상적 행태만 조롱하면 총선까지 문제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현실인식에 젖어 있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 여당의 왜소화는 간과할 수 없다. 여권의 신경은 여당의 비정상적 상황이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에만 온통 쏠려 있겠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입법활동으로 청와대·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제구실을 못한다면 국정은 흔들리게 되고, 그 피해는 정권을 넘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 

지금 여권의 시급한 과제는 여당의 위상 재정립을 고민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정치의 영역에서 여당을 더 존중해야 하며, 양 원장은 대통령 최측근의 무게를 새겨야 할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지금의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깊이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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