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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편과 의원정수 확대가 지금 정치개혁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꽉 막힌 정치에 변화를 줄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이 선거제는 지금 정치권의 가장 날카로운 논쟁점이다.

세대·지역·계층을 불문하고 균열 중인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게 있다면 “정치, 이대론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같아선 어떤 문제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절감(切感) 때문이다. 정치는 지금 모든 실패와 악덕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지난달 패스트트랙 정국은 ‘동물국회’의 아수라장을 다시 불러냈다. 이후 국회는 간판만 걸린 ‘빈집’이다. 추가경정 예산안은 13일로 딱 50일째 멈춰 서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경제가 모두 ‘불확실성’의 나락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다.

제1야당은 밖으로만 돌며 지지층 규합에 골몰 중이다. 여당은 ‘단독국회’를 으를 뿐 속수무책이다. 외려 야당은 “(단독국회를) 청하지 못하지만 바라는 바”(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라고 야유한다. 멀어지는 여야의 거리만큼 지지층의 적대감도 커졌다. 정치인들은 이 적대감을 동력으로 삼아 더욱 ‘악’하게 싸운다. 적대는 혐오로, 혐오는 ‘죽기 살기’식 저주의 정치로 악화됐다.

한국정치의 비극은 국회 5분의 4를 두 정당이 점령한 ‘양극화 정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이런 양극화 구조를 만들고,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1 대 1 다툼’에 지지층을 붙들어맬 편가름에 매달리고, 자신들 득점보다는 상대 실점에 기댄다. 애초 ‘협력 정치’의 싹이 트긴 쉽지 않다.

공통분모가 ‘지금 정치론 안된다’라면 출발점도 그곳이다. 정치의 구조·제도·문화를 모두 바꿔야 한다. 야당이 되면 “제도 탓이 아니다. 운용이 문제”라고 하지만, 매번 입장만 바꿔 반복되는 것을 보면 맞지 않다. 제도는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그 제도를 운용할 사람을 결정한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제도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제도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이 시기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가 다를 뿐이다. 권위주의 정권 동안 민심이 직접 반영되는 통로로서 지역구 다수대표의 장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원화된 이해관계를 담기엔 역부족이다. 마치 3차원 입체영상 시대를 살면서 흑백TV 시절에 갇힌 꼴이다.

특히 표심과 의석의 불일치는 제도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소외와 불만, 갈등을 만든다. 지역에 따라 40% 가까운 표심이 정치적 대리인을 내지 못하는 사표가 된다면 그들은 ‘불만스러운 다수’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처럼 지지층도 극단화하는 이유다.

선거제 ‘개혁’의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할까. 지금 정치의 소명은 ‘통합’이다. 양극화하는 정치를 다극화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다당제 안착 필요는 그래서 생겨났다.

문제는 비례대표 확대는 지역구 축소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 기득권의 벽은 선거제 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선거구 획정의 과거사를 보면 의석 하나를 놓고 사생결단하는 게 정치인들 생리다. 국회 의석을 줄이면 선거제 변화에 동의한다는 한국당 입장은 그래서 거짓이다. 의원들의 기득권 욕망을 부추겨 좌초시키겠다는 ‘떼쓰기’에 가깝다.

정치를 바로잡을 책임과 권리, 힘은 오직 주권자에게 있다. ‘이대론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정치적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 소진하고 만다면 주권자의 ‘직무유기’다.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바꾸는 일에는 딱 주권자들이 명령한 만큼만 움직인다.

주권자들이 막힌 정치의 숨길을 열어줘야 한다. ‘의원정수 확대’ 결단을 고민해야 한다. 정수 확대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권리와 책임을 삐뚤게 사용하는 제도의 결함이 문제다. 주권자들은 의원정수와 함께 권한과 책임의 수정도 명령해야 한다. 권력을 줄이고, 책임을 더하는 급부가 따라 붙어야 한다.

국민소환제는 그 대표적인 예다. 정치인 언행에 대한 주권자들의 책임 추궁이 명료해진다면, 거짓·막말·선동과 같은 황폐한 정치는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국회 전체 권력의 크기가 동일하다면 정수 확대는 개별 의원의 권력을 줄이는 일이다. 주권자들은 ‘정당해산’을 청원하기보다 의원정수 확대와 국민소환제 도입을 청원했어야 했다. 

문제는 남는다. 지금의 정당 문화를 감안하면 의원정수 확대에 걸맞은 공명한 공천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는 두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이라면, 용기를 내 시작해야 한다. 시작조차 않으면 변화하고 발전시켜 나갈 기회조차 없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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