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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다.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눈다’ ‘눈을 맞춘다’는 이 말은 요즘 사회 전 분야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덕목이다.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부 정책 홍보잡지의 명칭은 ‘위클리 공감’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토도,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무한경쟁 사회로 내몰릴수록 말로라도 반대의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 이심전심들이 반영됐을 터다.

그렇다면 공감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분야는 어디인가. 민심을 얻는 것을 제1가치로 두는 정치의 세계다.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듣겠습니다”. 진심이든 아니든, 정치 영역에서 사용되는 표현들이다. 여론과 눈을 잘 맞추는 세력은 흥하고, 그렇지 못한 세력은 망하는 것이 정치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다. 공감 프레임을 적용하면 작금의 정치환경도 이해하기 편하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속절없는 추락이 설명이 된다.

(출처: 경향신문DB)

정치와 공감을 연결해보자는 생각이 어떤 거창한 계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가죽점퍼 차림을 보고 떠올랐다. 요즘 홍 대표는 지방선거나 개헌 관련 대여투쟁을 논의하는 자리에 가죽점퍼를 입고 등장한다. ‘전투복’이라고 칭한다. 보수의 위기감을 알려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당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홍 대표는 평소 업무 때도 가죽점퍼 차림이다.

하지만 홍 대표의 가죽점퍼에선 도저히 비장함을 느낄 수 없었다. 뜬금없고 위압적이었다. 한국당 의원들이나 관계자들에게 물어봐도 반응이 다르지 않았다. “조폭 같다” “도대체 뭐하자는 것이냐” 등의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험지에 보내겠다” “연탄가스” “바퀴벌레” “암덩어리” 등 당내 비판세력에게 던진 막말성 위협들, 앙숙(안상수 창원시장)을 쳐내고 측근에게 공천을 준 사천논란까지 포개지면서 가죽점퍼는 홍 대표의 의도와 다른 반응을 불렀다. 구여권 관계자는 “가죽점퍼는 미끄러워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고 했다. 민심과 공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심리학자들의 의견도 물었다. 심리연구소 ‘함께’의 김태형 소장은 “비장감을 표출한다는 것이지만 남들이 보면 비정상적인 행동”이라며 “재기를 못할 것 같은 불안감, 절박감이 사실 비정상적인 상태를 만들어준다고 본다”고 했다. 심리학자 ㄱ씨는 “현실과 너무 거리가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니까,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자기동기화(Self-Motivating)의 과잉액션”이라고 했다.

공감능력 부족은 홍 대표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원내대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들개 조련사로서 배현진 전 아나운서를 ‘조련’시켜 반드시 6·13 지방선거에서 가능성을 보겠다”고 말했다. ㄱ씨는 “젊은 여성을 조련한다는 게 무슨 이야기냐. 지지계층을 결집한다며 아무 말이나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련’이란 말에 배 전 아나운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성차별적 발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 원내대표는 자신이 어떤 문제 발언을 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때때로 지나치게 격하다. 경찰을 미친개로 비유했다가 “경찰을 사랑한다”며 수습한 것이 대표적이다. 장 수석대변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을 때 논평을 통해 “참담하다”고 했고, 페이스북에는 “눈물이 자꾸 흐릅니다. 지금 이 순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이명박 정권 국정농단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잊지 않겠다”는 그의 발언과 민심의 거리는 멀었다. 당의 한 영남권 의원은 “당 대변인의 논평이라면 신중했어야 한다. 친이명박계 의원으로서 사감이 담겼다”고 했다.

요즘 여권에선 홍 대표와 측근들을 두고 ‘파이팅’ ‘힘내라’ 등 농담이 돈다고 한다. 홍 대표와 측근들의 언행이 위협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보수층을 와해시키는 만큼 홍 대표 존재로 손해볼 것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 대표가 정부를 향해 “주사파 정권” “위장평화 쇼” 등 막말을 퍼부어도, 더불어민주당은 정색하고 반박하지 않는다. “홍준표 때문에 큰일이다”는 한숨 소리는 오히려 한국당에서 새어나온다.

“싸우는 법을 안다”고 자부해온 홍 대표는 이런 지적에 대해 ‘언론의 흔들기’라며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가죽점퍼는 벗는 것이 어떨까. 굳이 점퍼를 고집한다면 새마을운동 점퍼는 어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며 태극기를 흔드는 강경보수층 마음이나마 얻으려면 차라리 이 편이 나을 것이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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