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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용 중인 스마트폰은 삼성 갤럭시노트3다. 이 기종에는 여러 기능이 탑재돼 있고, 다양한 앱을 내려받으면 활용도가 훨씬 커질 테지만 ‘디지털 문맹’을 겨우 면한 나는 전체 기능의 1%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기기 조작이 서툴러 SOS를 보내는 내게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가 문제를 뚝딱 해결해주고는 “이럴 거면 스마트폰 왜 써?” 하고 면박을 줘도 대꾸할 말이 없다. 통화, 문자 주고받기, 카카오톡, 카메라 기능, 뉴스 검색 따위가 활용하는 기능의 대부분이니 그럴 만도 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 스마트폰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그런 나도 누군가 내 스마트폰을 몰래 엿보고, 마음대로 조작한다고 생각하면 머리털이 쭈뼛 선다. 가족, 친구, 신문사 선후배, 취재원들과 주고받는 대화의 팔할 이상은 통화,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진다. 내가 회사 후배들과 나누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경향신문 사건팀이 무엇을 취재하고 있는지, 팀원들 각각의 성향은 어떤지, 회사 내부 사정은 어떤지, 시시콜콜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손금 보듯 알 수 있다.

내가 가입한 ‘네이버 밴드’를 보면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취향이나 정치적 성향이 쉽게 파악된다. 스마트폰에 등록된 전화번호부를 보면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범위가 그려지고, 일정표를 통해서는 내가 언제, 누구를 만나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검색하는 내용을 토대로 근래의 내 관심사를 유추할 수 있고, 위치정보 표시를 추적하면 내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했는지 동선을 고스란히 그릴 수 있다. 스마트폰 앨범에는 몇 년 전부터 가족과 찍은 사진이 수백장 담겨 있는데, 이것을 일별하면 내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을 ‘몰카’로 활용하면 영화 <트루먼쇼>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물론 내가 만나는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리얼타임으로 지켜볼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가운데)이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 스마트폰 해킹 추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_권호욱 선임기자


기계치에 가까운 나도 이럴진대 스마트폰을 제 분신 다루듯 하는 모바일족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몰래 엿보면 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 취향, 정치적 성향, 인간관계, 직업적 비밀, 소비 성향, 쉽게 말해 한 인간의 전부를 파악할 수 있다. 한 인간의 전모를 완벽하게 아는 건 오로지 신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예로부터 ‘신의 관점’은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보는 것으로 형상화됐는데, 모바일 시대에 신은 숭고한 하늘에서 혼탁한 지상으로 내려와 유동하는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본다.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스마트폰 도·감청 프로그램을 수년간 구입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늘 그렇듯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국정원을 옹호하고 있다. 국정원은 실험 목적으로 구입한 프로그램일 뿐 내국인을 상대로 도·감청을 한 적은 없다고 했지만, 믿기 어렵다. 지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프로그램을 구입한 점,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 개입한 점, ‘원세훈 국정원’이 야당을 포함한 정부 비판세력 전반을 체제의 적인 ‘종북세력’으로 규정한 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에서 보듯 이 정권 들어 국정원이 ‘안보기관’보다 ‘정치기관’에 가까운 행태를 보여온 점, 국정원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재미 잠수함 전문가인 안수명 박사를 해킹하려 시도한 정황 등을 보면 민간인 사찰과 정치·선거 개입 용도로도 도·감청 프로그램을 활용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마음만 먹으면 국정원은 이 프로그램으로 감시 대상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국정원이 ‘신의 눈’을 갖게 된 셈인데, 전지전능한 신과 달리 국정원은 무능하고, 무지하고, 편향되고, 치졸하다는 평판을 쌓아 왔다. 적어도 지금의 국정원에 도·감청 프로그램은 ‘신의 눈’보다 ‘악마의 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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