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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녁 자리에서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라는 것을 밝히면 열이면 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최경환 장관, 곧 그만두시죠?” 경제인을 만나도, 정치인을 만나도 질문은 똑같다. 그러면서 답도 그쪽에서 먼저 한다. “이번달 아니면 다음달에는 그만두실 것 같던데요.”
국민들은 안다. 서서히 정치의 계절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직설적으로 여당 원내대표에게 불쾌감을 나타내고, 친박과 비박이 여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 험한 소리를 내뱉는 것은 선거가 곧 다가온다는 얘기다. 그 여파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거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안다.
최 부총리는 친박의 핵심이다. 친박과 비박이 혈투를 벌일 내년 총선에서 최 부총리의 역할은 크다. 경제인이 최 부총리의 사퇴 여부를 물을 때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이제 곧 그만둘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제 곧 그만둘 사람인데 어떤 정책을 낸들 제대로 먹힐 리 없다. 떠난 장관은 미래를 보증해주지 않는다. 노사정위원회도, 최저임금위원회도 잇달아 파행을 겪는 이면에는 ‘시한부 장관’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핵심 아젠다로 삼았던 노동·금융·공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민간을 통제할 수단도 없고, 정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지만 협상력 부재의 원인은 ‘시한부 장관’을 의심해볼 만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5년 경제정책 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기위해 입장하고 있다. _김정근 기자
최 부총리뿐 아니다. 현역 친박 의원이면서 행정부 수장을 하는 인물들이 꽤 있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같은 처지다. 당장 내일 나가지는 않더라도 내년에는 그 자리에서 거의 볼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다. 총선은 내년 4월이다. 이 선거에 출마하려면 내년 1월에는 그만둬야 한다. 여당은 내년 4월 총선의 지역구 후보자를 오픈 프라이머리(후보를 선발할 때 일반 국민이 직접 참여해 선출하는 방식)로 뽑기로 했다. 지역구가 탄탄하지 않은 장관이라면 좀 더 일찍 사표를 내고 선거 준비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일부 장관의 경우는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그들은 국회에서 아는 정치부 기자를 만나면 “곧 (국회로) 돌아가면 잘 봐달라”는 말까지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시한부 장관들이 많다 보니 행정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뭔가 대책은 내놓는데 추동력은 약해 보인다. 가뜩이나 집권 중반부가 넘어가면 힘이 떨어진다. 눈치껏 올해만 버티면 바뀔 장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관료들도 느슨해진다. 관료들을 탓할 일이 못된다. 인지상정이다.
힘을 보태줘야 할 여당과도 충돌이 잦다. 내년 총선을 위한 ‘경력관리용’으로 친박 의원들에게 한 자리씩 내준 자리다 보니 비박진영에서 그대로 둘 리 없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기획재정부가 용도를 기재하지 않은 ‘깜깜이 추가경정예산안’을 가져오자 돌려보냈다. 한국인 첫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당선을 놓고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부에서 협조를 하지 않으려 해 내가 모처에 특별히 부탁했다”며 해수부를 질타했다. 결국 기재부는 유 대표를 제외하고 추경 당정협의를 벌였다. 유기준 해수부 장관은 “(김 대표의 발언에) 약간 실망감이 있다”고 반박했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치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 행정부는 ‘정경일치’에 가깝다. 정치리스크 때문에 경제정책이 제대로 굴러가기 힘든 구조다. 차라리 나갈 장관은 빨리 나가는 게 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일지 모른다. 아직도 정권은 반이나 남았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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