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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주주의 역사가 길지 않지만 나름 성공한 정부가 있고 실패한 정부가 있다. 실패한 정부를 들여다보면 대형사고가 꼭 끼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괌 비행 추락사고 등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김영삼 정부는 결국 금융위기와 함께 막을 내렸다. 박근혜 정부도 세월호 침몰,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다가 결국 이리 되었다. 대형재난은 모든 정치·사회적 이슈를 빨아들인다. 원인규명, 관련자 처벌, 예방책 마련 등을 하느라 우왕좌왕하다 보면 국정동력을 잃고 정권의 실패로 귀결되는 것이다.

안전에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안전시스템을 만들지 못하고, 이론과 실행력을 갖춘 인재들을 발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은 안전시스템이 생활 그 자체에 녹아들어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수업이나 근무시간 가릴 것 없이 비상 사이렌이 울린다. 일단 사이렌이 울리면 이후의 과정은 물 흐르듯 진행된다. 방송 담당자는 방송을 하고, 대피 인솔자는 뛰어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밖으로 대피한다. 어느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 학업과 직장으로 미국에서 7년 남짓 머무는 동안 사이렌 소리에 밖으로 대피한 게 족히 30번도 넘는다. 허겁지겁 대피했지만 대부분 아무 일 없이 종결됐다. 언뜻 보면 비효율적이고 한심한 짓 같지만 만에 한 번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 이들의 안전시스템의 본질이다. 현장에 정통한 실행력을 갖춘 인재들을 발굴해 책임있는 자리에 앉히는 것도 중요하다. 운동경기에 뛴 적이 없는 사람을 코치나 감독으로 발탁하는 경우가 거의 없듯 현장을 모르는 사람을 안전부문의 주요직에 앉혀서는 안된다. 고위공무원이 교각의 안전성을 점검한다고 수십미터 교량에 매달려 있는 광경은 우리에게는 드물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현장의 격렬함이 뼛속에 각인되어 있는 진짜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워야 재난의 예방과 대처가 가능하다.

곧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대형재난 한번이면 그 정부는 곧바로 추진력을 잃고 실패한다. 현장에 정통한 유능한 인재들을 발굴하여 안전 관련 주요자리에 포진시키고 물 흐르듯 매끄러운 안전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정부가 실패하지 않는 열쇠이다.

성낙문 | 한국교통연구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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