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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8·27 전당대회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당내는 안 전 대표의 출마·불출마 논쟁으로 들끓고 있다. 대선에서 패한, 그것도 3등 후보가 최소한의 성찰도 없이 조기 등판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불출마론 요체다. 반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 창업주가 결자해지하는 게 책임 있는 태도라는 주장은 출마론의 핵심이다.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벌거벗은 권력정치’를 보는 느낌이다. 명분의 옷을 입지 않은 채 오직 권력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안철수 등판’ 논란은 호남 (결별), 더불어민주당 (연대), 제3지대 (위상), 중도보수 (통합) 등이 얽히고설킨 문제 아닌가.

이 아슬아슬한 ‘파국적 균형’(안토니오 그람시)의 시작은 안철수다. 2011년 기성정치에 균열을 내며 등장했던 새 정치, 지난해 총선 정당 지지율 2위를 이끌었던 돌풍, 그리고 대선 패배와 제보조작 사건이 몰고 온 위기 이 모두는 안철수 이름 석 자를 빼고 국민의당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안 전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 반대파 의원들과 만나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새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복귀와 출마 비판에 대한 단호한 답변이다. 내겐 안철수의 지난 6년을 되짚어 봐야 하는 역설로 들렸다. 안철수의 시간은 과연 변화와 혁신의 궤적이었나.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3일 여의도 당사에서 8·27 당대표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2012년 18대 대선 무렵은 제3지대 기대치가 커지던 시기였다. 대선 자체가 양강 구도, 이념전으로 흐른 데다 박정희 대 노무현 대리전이라는 유훈 정치 조짐까지 보태지면서다. ‘안철수 브랜드’인 새정치는 그 틈을 비집고 제3지대를 거머쥐었다.

그해 5월30일 당시 부산대 강연에서 “정치가 과거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10년째 한쪽에선 어떤 분 자제라고 공격하고 한쪽에선 싸잡아 좌파세력이라고 공격하는 구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정치 데뷔 무대에서 정치권을 ‘낡은 프레임, 낡은 체제’라고 직격하며 스스로 ‘양쪽을 다 긴장시키는 정치쇄신의 촉매’라 규정했다. 안철수의 등장으로 정치권 주류질서도 변했다. 보스 주도의 엘리트 관료집단, 민주화 세력 중심에서 벗어나 전문가 집단과 디지털 세대가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지만 적어도 20대 총선까진 ‘안철수식 새 정치’가 통했다.

2017년 대선 전후, 정치권은 과거와 달라졌다. 보수 진영은 초유의 분당(분화) 사태를 맞았다. 바른정당은 극단적 보수를 거부하며 자유한국당과 갈라섰다. 9년 만에 정권을 잡은 진보개혁 진영은 실용 노선을 거부감 없이 껴안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김현종·박기영 인사 등이 대표적이다. 여야 어디에서도 ‘중도를 확보하라’는 구호가 들리지 않는다. 이미 양극단을 거부한 채 각자 필요에 따라 좌우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3 정당 처지에선 진보와 보수를 배격하는 중도적 태도로는 설 자리가 없게 됐다.

그런데 안 전 대표는 지난 3일 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이라며 “다당제의 축은 국민의당이 살아야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나는 좌우파가 아니다”라는 근본주의적 중도주의에 빗대 ‘극중주의’를 선언했다. 지난 6년 동안 정치는 변했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의 제자리걸음이 남긴 후과는 결코 작지 않다. 정치 신상품 ‘안철수 현상’은 낡았고, 국민의당은 제3 정당 가치를 잃었다. 출마 논란에 가려졌을 뿐이다. 김태일 당 혁신위원장은 이 시기를 “친안철수 세력과 호남의 파국적 균형이 깨지면서 완전한 파국으로 갈 것인지, 새로운 합의를 통해 재균형으로 수렴될 것인지, 이도저도 아닌 채 갈등만 장기화할 것인지 갈림길”이라고 진단했다.

재균형으로 수렴되려면 안철수의 목표는 탈안철수여야 할 것 같다. 국민의당이 서 있는 ‘파국적 균형’의 끝도 결국 안철수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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