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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문화와 삶

애도의 방식

opinionX 2022. 11. 3. 10:56

이태원 참사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그날을 떠올린다. 그사이 이태원과 서울광장에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되었는데,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고’와 ‘사망자’는 책임을 미루고 지우는 단어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뜻밖에 일어났기에 손쓸 수 없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사망자 또한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통해 죽음을 단순화시킨다. 

그러나 사고가 아닌 참사다. 사망자가 아닌 희생자다.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다. 애통하다. 참담하다. 참사 당시, 국가는 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국가는 왜 책임을 다하지 않았는가.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마련되기도 전, 대대적인 온라인 여론전이 이루어졌다. 핼러윈은 외국 전통이 상업적으로 변질돼 청춘의 방종을 부추기는 날이고 상인들이 이를 돈벌이 기회로 삼았다는 것이다. 안전불감증, 유명인의 출현, 사고 후에도 춤과 음악이 멈추지 않았다는 증언, 대여섯명의 남성이 밀라고 소리쳤다는 소문 등 참사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이야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개인에게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 핼러윈에 이태원을 찾고 술 마시며 논 그들에게 말이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당한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는 길이었음을 강조했던 이들이 있었다.

참사 당일, 실제로 112에 수차례나 신고가 접수되었다. 최초 신고자의 말에는 “압사당할 것 같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렇다. 참사 다음날 현장을 찾은 대통령이 “압사?”라고 반문했던 그 단어 말이다. 현장에 있었던 것은 ‘공백’과 ‘부재’였다. 공권력의 공백과 안전할 권리의 부재. 공권력에는 혼잡이 예상되는 도로를 통제할 권리, 대규모 군중이 무사하도록 치안 유지에 힘써야 할 의무 등이 포함된다. 이것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으면 상황은 위태로워진다. 그날,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정부는 없었다.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정부는 11월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했다. 해당 기간에는 모든 공공기관에서 조기를 게양하고 애도를 의미하는 리본을 패용하게 된다.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으로 착용하라”는 공문이 왔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근조(謹弔)’라는 단어에 담긴 무게가 사라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애도는 강요하거나 종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만든 애도기간은 국민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지난 며칠 사이, 온라인 지식 나눔 공간에 올라온 질문들을 보라. “국가애도기간이 뭔가요? 그 기간 동안에는 출근하지 않는 건가요? 시민들에게 금지되는 행동이 있나요?”

비단 ‘국가애도기간’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애도했을 것이다. 애도의 시작과 끝은 정할 수 없다.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노란 리본을 가지고 다닌다. 애도의 방식 또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향소에 가서 헌화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머문 곳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슬픔과 분노와 무기력 상태를 오가며 어떻게든 일상을 지키려 할 것이다.

애도의 과정에는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는 일 또한 포함되어야 하는데, 참사 이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었다. 유감을 전달하면서도 과오는 인정하지 않았다. 사흘. 정부와 지자체가 사과를 결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지난 8월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시행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책임입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일어났다. 애통과 참담 사이에서 지치지 않고 책임을 따지는 것, 이것이 나의 애도 방식이다.

<오은 시인>

 

 

연재 | 문화와 삶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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