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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태극기부대의 포연으로 자욱하지만, ‘어대황’(어차피 대표는 황교안)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탄핵’을 끝까지 반대했던 비율은 15~18% 정도다(2017년 2월 한국갤럽 여론조사). 극우, TK(대구·경북), ‘박정희-박근혜 신도’ 등의 최대 교집합으로 한국당을 죽어도 버리지 않을 콘크리트 지지층 규모다. 작금의 20%대 한국당 지지율은 이 절대 지지층에 현 정부에 실망한 합리적 보수층이 유입돼 형성됐다. 보수의 폐허 속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 득표율이 24%였다. 상승했다지만, 여전히 ‘홍준표 득표율’ 어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지지율 상승에 취할 상황도, 희망고문에 설렐 수준도 아니다. ‘중도 확장성’을 무너뜨릴 ‘탄핵 이슈’를 건드린 건 황교안 후보의 ‘실책’이 아닐 것이다. 결코 스러지지 않을 콘크리트 지지층에게 내보이는 황교안의 존재 증명이다. (합리적 보수정당이 아닌) 한국당에서 당권을 잡아 ‘큰 꿈’을 도모하려는 황교안이다. 한 번은 ‘탄핵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고백이 필요했다. ‘어대황’인 국면에서 나름 계기를 포착했을 터이다. 오세훈만큼의 ‘탄핵 역사성’ 인정을 기대하는 건 황교안을 잘못 평가한 것이다. 탄핵 부정, 실로 황교안‘다운’ 커밍아웃이다.

황교안‘다운’을 구축하고 있는 세 갈래 층위는 ‘공안검사 황교안’ ‘전도사 황교안’ ‘박근혜 황태자 황교안’이다. 각각 소위 애국보수 세력, 선거 때면 막강한 결집력을 발휘하는 보수 개신교, 태극기부대를 위시한 친박 세력에 어필하는 토양이다. 세 세력은 고스란히 한국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이룬다. ‘탄핵 총리’의 태생적 한계를 지닌 황교안이 졸지에 보수의 희망으로 부상하고, 차기 대선주자 선두에까지 오른 뒷배가 이들이다.

황교안을 보수 진영의 다른 정치인들과 구분짓는 건 단연 기독교다. 전도사인 그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50년 동안 주일 예배를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고 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검사 시절에도 부임하는 곳마다 예배모임을 만들어 ‘검찰 복음화’ ‘지역 복음화’를 부르짖었을 정도다.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 때 종교적 편향이 이슈가 될 정도로, ‘전도사 황교안’의 언행을 보면 전형적인 보수 개신교의 멘털리티를 드러낸다. ‘장로 대통령(이명박)’을 만들어 권부로서 지위를 누렸던 보수 개신교계가 황교안의 등장에 고무되고 호응하는 것은 필연이다.

황교안과 보수 개신교의 강력한 교집합은 북한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 노선이다. 미국의 기독교 복음주의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함께 세계의 조소거리가 되었지만, 유독 한국에서 꽃을 피워 개신교의 주류가 되었다. 미국 복음주의의 사탄화 대상이 이슬람인 반면 한국의 복음주의에서는 북한 정권과 남한의 종북이다. 그래서 보수 개신교계가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유례없는 강단을 보여준 황교안을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다윗”으로 호명했을 게다. 실제 황교안에게 통합진보당 해산은 ‘신앙이 된 반공’ 소명의 실천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안 찍은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고 했던 전광훈 목사(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는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직후 주일 예배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사람 황교안 장로가 법무부 장관이 됐다. 황 장로가 한칼에 해치웠다. 황 장로가 이정희와 법정에서 싸울 때, 아침에 꼭 나한테 전화를 했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그러면 내가 늘 메시지를 넣었다. (중략) 통진당 해체는 하나님이 이기신 거다.”

세속의 정치를 종교적 계시로 받아들이면 위험하다. 신앙이야 자유지만, 공직과 정치를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장으로 보거나 공직 재임 중 일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관철됐다고 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교회 간증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어떠한가. “2015년 국무총리로 있을 때 가뭄이 극심했다. 함께 동역하는 분들과 기도를 시작했는데 2주 후에 비가 내렸다. 또 국정의 어려움 중 하나가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인데 생명을 살리는 법안인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이 10여년이 지나도 통과가 안돼 기도를 시작했는데 두 달 후에 통과가 된 일도 있었다.”

‘탄핵 총리’의 본색을 드러낸 황교안보다 정교일치를 내면화한 듯한 제1야당 대표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 더 무섭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공존·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정치는 동행이 힘들다. 근본주의에서 ‘악’은 오로지 물리쳐야 할 대상일 뿐이다. 황교안과 보수 개신교 목회자들에게 지금 최고 악은 북한 정권과 ‘주사파’ 문재인 정부이다. 원리주의적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제1야당 대표의 출현은 한국 정치를 혐오적 대립과 증오의 대결 구도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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