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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집요하고도 악마적이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가 났을 때 느닷없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소환한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말이다. 내란음모 사건, 아니 내란음모 조작 사건 당시 검찰 ‘녹취록’에 나오는 혜화전화국 발언을, 눈곱만큼도 연관성이 없는 KT 화재와 연결 짓는 신공을 발휘했다. 혜화전화국은 이석기의 발언이 아니라는 것은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저들은 분단체제를 흔드는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종북몰이’가 필요할 때마다 강제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구속된 이석기를 불러내 휘둘렀다. 이석기와 통합진보당 사건은 지나간 과거사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이석기 문제’가 풀려야 이 지독한 분단과 종북의 논리에서 해방될 수 있다.

혜화전화국 발언만이 아니다. 당시 내란음모 사건의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2013년 5월2일 집회 녹취록은, 재판을 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샅샅이 공개됐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가공한 녹취록으로 일방적 여론재판이 펼쳐졌다. 재판 과정에서 이 녹취록은 400여곳이 의도적으로 오녹취된 게 드러났다. 원래 강연에서 “전면전은 안된다”는 말은 검찰 녹취록에서 “전면전이야 전면전!”으로 바뀌었다. “선전 수행”은 “성전 수행”으로, “통일적인 대응”은 “폭력적인 대응”으로, “시 단위에 있어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은 “실탄이 있어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으로 둔갑되었다. 언론은 그대로 충실히 베껴 썼고, 재판이 끝난 뒤에도 제대로 바로잡지 않았다.

녹취록 사안은 ‘검증 부실’을 탓할 수나 있다. 국회의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나온 ‘북한과의 연계’ 보도는 더하다. ‘RO 조직원 6~7명 최소 2차례 밀입북 포착’ ‘RO 조직원 북 공작원 상시 접선’ ‘북 접촉 RO 조직원, 경찰총국 225국 연계 의혹’ 등등. 이석기가 총책인 지하혁명조직 ‘RO’가 북한과 연계해 내란을 음모했다는 소설은 그렇게 탄생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북한과의 연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내란음모의 핵심인 지하혁명조직 RO의 존재 자체가 법원 판결에서 부정된 판이다. 그렇지만 ‘북한과의 연계’ 보도 역시 정정되거나 바로잡히지 않았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결말은 아는 대로다. 재판 과정에서 지하혁명조직 RO는 존재하지 않으며, ‘5·12 회합’에서 내란 범죄 실행을 위한 ‘합의’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내란음모의 핵심 근거가 기초에서 부정되었음에도, 이석기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내란음모는 없었지만 내란선동은 있었다.’ 강연에서 행한 ‘말’만으로 내란선동죄가 적용되어 9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국무부조차 ‘자의적 구금’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한 이 기이한 판결의 내막이 벗겨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에 협조한 사례 중 ‘자유민주주의 수호 판결’로 이석기 사건을 첫번째로 적시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근거가 되었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재판부 배당을 조작하면서까지 박근혜 정권에 ‘선물’로 바쳐진 것이다.

내란음모 사건이 조작되었음이 확인되었고, 이제는 ‘재판거래’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석기는 0.75평의 독방에 6년째 갇혀 있다. 제도 언론의 침묵과 정치권의 방조 속에서 그는 잊혀짐을 강요당하고 있다. 하지만 ‘혐오와 가짜뉴스, 기회주의와 두려움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비겁한 허위의 성채를 그들이 균열 내고 있다. 지난 8일 56개의 시민사회단체가 광화문광장에서 공동주최한 ‘이석기 의원 석방’ 대회에 2만명이 참석했다. ‘이석기 석방’만을 요구하기 위해 열린 집회에 전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여성과 청년 등 다양한 계층이 모였다. 그들은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굳게 닫혀 있는 감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광장의 외침과 4대 종단 지도자들의 호소, 국제 인권기구들의 석방 요청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정권의 담당자들에게, 특히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에게 어려운 청탁을 하나 드린다. 언론이 방기한 책임을 대신하여,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실체를 추적한 <이카로스의 감옥>(문영심·말)을 안 읽으셨다면 꼭 한번 펼쳐 보시라. ‘해도 너무하지 않으냐’는 물음이 당시 정치공작과 사건 조작의 책임자들에게만 향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실 것이다. 그리고 집요하고도 부당하게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을 소환하는 그들에게도 감히 일독을 권해드린다. “언론을 통한 무분별한 왜곡보도와 마녀사냥으로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된 사건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는 그 고통스러운 기록을 대하고, 너무도 뒤늦게 ‘이석기’를 기억하는 부끄러움은 필자만이 아닐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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