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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사건’이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 13일 한 일간지가 단독보도라며 ‘이수역 사건 여성, 중대병원서는 입원 퇴짜’ ‘언니가 맞았다고 했는데…본 적은 없어’라는 제목의 기사 2건을 쓰면서다. 이후 다른 언론에서도 이 보도를 인용하며 여성들의 부상은 경미했으며, 증언이 보지도 않고 한 거짓임을 암시하는 제목을 건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아직 경찰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기에 사건의 실체를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기사들은 제목만으로 누군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의심을 하게 하고, 잘못된 성별 대결 구도를 강화할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다.

‘이수역 사건’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어떻게 봐야 하는지 질문한다. 나 역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사건 자체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나는 36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왜 이 사건에 분노하고 공감하는지에 주목한다. 그들이 경험하는 일상과 그 안에 묻어있는 사회적 편견들이 이 사건의 실마리이자 맥락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녀들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50대 여성의 경험담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갑자기 뭔가가 뒤통수를 강하게 타격하는 느낌을 받았단다. 가방, 손 또는 팔꿈치로 친 것 같은 느낌. 고개를 돌려보니 젊은 남자 여러 명이 있고, 한 남자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거푸 인사를 하더란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사과를 하니 실수려니 받아들이고 넘겼단다. 그런데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실수가 아닌 것 같더란다. 그 젊은 남자들이 주고받던 “야 인마, 왜 그래?” “왜 그랬어?”라는 얘기가 마음에 걸렸던 것.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뒤통수에 전해진 분명한 타격감, 일행들이 주고받던 말, 그리고 자신의 짧은 머리와 입고 있던 롱패딩 뒤에 쓰인 ‘페미니스트’라는 문구 등이 연결되면서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란다.

11월 2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이수역 폭행피해 여성의 청원글과 이에 대응해 여성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글. 국민청원 게시판 화면 캡쳐

고의라고 믿기도, 아니라고 확신할 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 이것이 여성들이 경험하는 일상이다. 여성들은 이와 유사한 일들을 너무 많이 경험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다른 여성들의 경험이 보태지면서 집단의 경험, 집단의 정서가 형성된다. 이수역 사건에서 ‘민낯, 짧은 머리’라는 키워드만으로 36만명의 여성이 반응한 것은 자신들의 일상에 쌓여 있던 무수한 경험들에서 축적된 공동의 분노 때문일 것이다. 사건의 전말이 어떻든 상관없이 어떤 분위기와 맥락에서 그런 폭력적 상황이 일어났을지 여성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수역 사건에서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36만명 여성들의 공동의 분노를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메갈은 길에서 패죽여도 법적으로 정상참작해라” 같은 이수역 사건 기사에 달린 섬뜩한 댓글은 이 사건에만 등장하는 서사가 아니다. 모든 성차별·성폭력 이슈에 등장한다. 성차별을 말하는 여성들을 좋은 페미니스트와 나쁜 페미니스트로 나누고, 나쁜 페미니스트는 메갈·워마드와 등치시켜 악마화해 나쁘니까 응징할 수 있다는 생각. 정말 위험하다.

이런 위험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일이고,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은 근시안적인 객관의 틀에 갇혀 사건을 자극적으로 다루지 말고 다수 여성들의 경험과 분노의 감각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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