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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갓 민주연구원장을 글감으로 하느냐 하겠지만, “대통령과 연관되는 상징성과 영향성, 상관관계가 너무 커서” 그(양정철 민주연구원장)에 대해 쓴다.

돌이켜보면 그의 퇴장은 강렬했다. 그의 “숨을 콱콱 막히게 하는” 복심, 왕의 남자, 실세, 최측근 같은 권력의 수식이 무엇이든 변치 않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거리가 제일 가까운 측근이라는 사실이다. 결코 정치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떠밀어 호랑이 등에 태워,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을 있게 한 주역이다. 그런 그가 정권 출범과 동시에 조건 없이 퇴장을 선언한 것은 신선했고 아름다웠다. 정권마다 비극으로 점철된 측근정치의 사슬을 끊어내는 용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주인이 된 지 이레가 되는 날 새벽 기자들에게 발송한 ‘제 역할은 여기까지 입니다’라는 문자메시지의 진정성을 제척할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잊혀질 권리를 달라”며 떠나 2년 동안 대통령 근방에도 얼씬거리지 않고 해외를 떠돌며 “모질게 권력과 거리를 두어온” 처신으로 입증해 보였다.

왜 그리 모질게 권력과 거리를 두려 했을까. 세 가지 이유를 자기 언어로 정리한 적이 있다. 오래 모셨던 사람들이 곁을 내줘서 새 사람들이 끊임없이 수혈될 수 있는 인적 구조를 만들고, ‘친노 패권’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대통령과 가깝고 특별하게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는 내가 비록 덜 중요하고 덜 높은 자리를 맡아도 결국은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부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2018년 1월 한겨레신문 인터뷰). 집권 전반기 친노 패권, 측근정치, 비선, 인의 장막 프레임이나 논란이 등장하지 않은 건 그와 이호철 등 최측근들의 희생적 퇴장에 힘입었다.

그의 복귀 역시 강렬했다. “5년 백수” 다짐을 거두고, “정권교체의 완성은 총선 승리”라는 출사표를 앞세워 민주연구원 사령탑으로 돌아온 그가 일으킨 정치적 소용돌이가 세차다. 야인 양정철의 일거수일투족도 뉴스거리였는데, 정치 무대로 돌아온 그에게 각광이 쏟아지는 건 필연이다. “지인과 함께한 오래전 약속인” 국정원장과의 만남이 사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그이기 때문일 터이다. “총선 병참기지” 민주연구원장 양정철이 한 달 새 보여준 행보는 실로 광폭이다. 

압축하면 이렇다. 민주연구원장 취임 이틀 만에 국회의장을 독대했다. 그 이틀 뒤엔 광화문 시민문화제에 참석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직접 차기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 그 사흘 뒤엔 서훈 국정원장과의 만남이 있었다. 지난 3일에는 민주연구원과 광역지자체 연구원들과의 업무협약 행사를 계기 삼아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를 따로 만났다. 10일에는 경남 창원을 찾아 ‘이심전심의 동지’ 김경수 경남지사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지자체 연구원과의 정책협약이 민주연구원의 역할을 벗어난다고 보지는 않는다. 업무협약 자체가 아니라 ‘민주당의 정치 참모’(이재명 경기지사) 양정철이 대선 예비주자들과 줄지어 만나는 것이 자극적이다. 인사치레일지라도 박원순 시장에게 “우리 민주당의 주요 자산”이라고 대놓고 평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분명 권력은 ‘크기’가 아니라 ‘거리’에서 나온다. 정치적 존재감과 위상을 이토록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보이기도 힘들다. ‘원외대표’라는 별칭이 단지 비난과 시샘의 산물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해외 유랑 시절 자신의 존재가 문 대통령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곁’을 지켰지만 대통령 문재인과는 ‘거리’를 지켰던 양정철은 다시 곁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청와대만이 곁이 아닐 게다. “정권교체의 완성인 총선 승리를 위해 피하고 싶은 자리를 맡았다”고 했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자리였다는 건 그만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일 터이다. 당장에 그가 물러남으로써 죽였던 패권, 측근정치 프레임을 회생시킬 수 있다. 국정원장과의 만남을 위시해 일련의 대선주자 줄만남이 과도한 시비를 일으키는 게 함의하는 바가 있다. ‘양정철’이라는 존재만으로 “비정상적 시선”이 쏠리고,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주의하는 것일 수 있다. 그의 동선과 행보에 대통령이 대입되고, 연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가 말한 대로 대통령 측근의 팔자다. 측근정치에서 위세와 충정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모질게 두어온 권력과의 거리를 접고, 대통령 곁으로 돌아온 ‘양날의 칼’은 경계가 무디어지는 순간 내부를 베기 십상이다. 본디 권력이란 칼에는 날이 있을 뿐 손잡이가 없는 법이다. 끝내 돌아온 지금이야말로 “이전 정부와 대통령 측근들을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글에서 큰따옴표로 인용한 것은 모두 인터뷰 등에서 나온 양정철 원장의 말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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