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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인사와 관련한 술회가 없다. 시스템 인사를 정립시킨 참여정부는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별도의 ‘인사 실록’을 퇴임 전부터 준비했다. 뒤늦게 2013년 나온 ‘밀실에서 광장으로 참여정부의 인사혁명’이라는 수식이 붙은 <대통령의 인사>(박남춘 대표 집필)가 그것이다. ‘참여정부 인사의 최고 실세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스템 속에서만 인사를 했다. 추천(인사수석), 검증(민정수석), 결정(인사추천위원회) 단계마다 보완·견제 시스템도 촘촘히 가동했다. 추천 단계에서 자문위를 두어 지역·영역별 인재를 발굴해 추천하고, 외부인사까지 참여하는 검증자문위를 두고 공직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자문했다.

시스템 인사의 위력은 결과로 증명된다. 인사청문 대상자 중 낙마한 숫자, 낙마율이 가장 낮은 정부가 노무현 정부다.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 강행’ 경우도 제일 적다. 청문보고서에 부적격 의견이 병기된 인사의 비율도 가장 낮다. 야당도 ‘적격’이라고 동의한 인사가 많았다는 얘기다. 낙마와 임명 강행을 포함한 ‘인사 논란’ 비율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역대 가장 인사검증을 깐깐히 했던 정부가 참여정부인데, 그 민정수석이 저다. 인사검증에 관한 방대한 매뉴얼을 마련해 놓고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매뉴얼만 따랐다면….”(2017년 3월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토론회)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신임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 매뉴얼에 충실했을 ‘문재인 청와대’의 인사 성적은 낮은 수준이다. 2년 동안 인사청문 대상자 중 낙마한 인사가 8명이다. 각기 11명씩인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는 ‘아직’ 적지만, 참여정부에 비해선 벌써 곱절 이상이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음에도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10명에 이른다(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10명, 노무현 정부 3명). 지독한 야당을 상대한 탓도 있지만, 대통령의 인사에 독하지 않았던 야당은 없다.

같은 시스템 인사인데 왜 이럴까. 우선 인재 발굴의 치열함이 수반되지 않고, 검증 잣대가 무디어지면 아무리 완비된 시스템일지라도 무용지물이 된다. 여태껏 낙마한 인사들의 흠결은 대부분 청와대가 ‘알고도’ 넘어간 것들이다. 결국은 낙마를 불러온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을 검증 단계에서 ‘놓친 게’ 아니라 ‘문제없다’고 판단했다는 게 심대한 일이다. 어쩌면 내재화되고 있는 도덕적 해이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택 3채 보유에 ‘뭐가 문제냐’고 따지고, 전세금을 올려 유학 중인 아들에게 포르셰를 사준 것이 ‘무슨 문제였겠느냐’는 동떨어진 인식이 발현됐을 터이다. 청와대 대변인의 재개발지 건물 투기도 ‘위법은 없는 노후대책’으로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도덕성이 흔들리면 개혁의 당위와 국정 동력의 약화를 불러오게 된다.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가는 힘은 국민 지지밖에 없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높은 도덕성이다.”(2018년 6월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또 하나, 수차례 인사 사고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사과한 적도 없다. 책임의 실종이 ‘인사 실패’의 반복을 불러왔다. 2명이 낙마하고 ‘대통령의 입’이 도덕성 문제로 물러났는데도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다. 잘못한 것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가 신뢰를 떨어뜨린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인사권은 책임을 동반한다. 2005년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낙마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을 경질했다. “국민들에 대한 도리를 다하기 위한 문책일 뿐이지 실제 잘못은 대통령이 한 것이라고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국민들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은 관상용 액자로만 걸려 있어서는 안된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 압승 뒤에 “두려운 마음”으로 참모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유능과 도덕성, 겸손함이다. 경제·민생에서 입증될 ‘유능함’은 인내와 시간을 요하지만, 도덕성과 겸손은 다르다. 4·3 보선 결과에 담긴 ‘불편한 진실’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천박한 수구”로 내닫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유권자들이 ‘마음 놓고’ 찍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촛불정부’가 도덕적 우위와 겸손함을 의심받게 되면, ‘그놈이 그놈들’이란 냉소와 체념이 나라를 덮게 된다.

상투적이나 절실한 진단, ‘초심’을 돌아보자.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돼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약속으로 울림을 던진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이런 다짐도 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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