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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편과 큰아이가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재택근무는 전에도 필요시 했지만 이번에는 강도가 달랐다. 평소 아이들을 챙겨주고 살림을 도와주는 이모님 역시 출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자 돌봄과 가사, 작은아이 육아는 오로지 내 몫이었다. 두 번의 격리기간 동안 한 번씩 된통 앓았다. 코로나 감염이 우려돼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매번 받았지만 모두 음성이었다. 문득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누가 날 돌봐줄까’ 의문이 들었다.

몇 년 전 이유를 모른 채 시름시름 앓다가 몸무게가 크게 줄면서 오랜 기간 일을 쉬었다. 병명을 찾는 데 거의 반년이 걸렸지만 치료과정은 더욱 편치 못했다.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아픈 몸으로 자녀들을 돌보고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는 게 끔찍하게 괴로웠다. 첫아이 출산 후 시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아이가 12살 될 때까지 다치면 그것은 엄마 책임이다. 엄마는 절대 아파서도 안 된다.” 늘 긴장하며 살라는 당부였겠지만 적잖이 당황했다.

문제는 여성들을 향한 가부장적인 말들과 직장맘을 폄하하는 세간의 시선이 싫으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스스로를 그 틀에 가둬놓고 있는 자신이었다. 애한테 신경 안 쓴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퇴근 후 피곤함을 무릅쓰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어지간히 아픈 게 아니면 부엌에서 고무장갑을 끼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마다 번민했다. 작가이자 인류학자인 마저리 울프가 말한 전근대 아시아 여성들의 ‘자궁 가족’의 개념을 21세기에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이다.

‘자궁 가족’은 남편 집에 편입된 젊은 여성이 자녀를 통해 세력을 구축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성 그 자체로서는 권력을 갖지 못하지만 아이를 낳고 잘 키울 때 가족 내 여성의 권력이 막강해진다는 것이다.

일하는 대다수 엄마들은 자신의 커리어와 육아 사이에서 방황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던 여성이더라도 아이가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 교육에 올인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반면 아빠들에 대해선 비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남성들의 경우 아이의 성장과 커리어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인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여성이 대놓고 차별받는 것은 옛날 일이라 하더라도 아직도 가족 내에서 엄마라는 타이틀을 지닌 수많은 여성들은 대놓고 아프지도, 맘 놓고 쉬지도 못한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지적대로 “한국 여성들의 가사노동 시간이 남성보다 5배 많은” 상황에선 작은 ‘개인적인’ 차별들이 모여 큰 ‘구조적인’ 차별을 낳게 된다. 지난 8일 여성의날을 맞아 발표된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국 중 10년 연속 꼴찌를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등 성 갈라치기 행보를 보인 윤 당선인이 향후 “여성을 존중하는 휴머니즘으로서의 페미니즘”을 어떻게 구현할지 의문이 든다.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엄마 탓이 아니고, 엄마가 아파도 가족들이 협력해 엄마의 쾌유를 적극 돕는 사회가 과연 언제쯤 도래할까 싶다.

문주영 전국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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