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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주인과 손님들이 격하게 대통령을 비난한다. 이슈도 이유도 다양했다.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었지만, 식사가 편치는 않았다.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이런 문제가 생기는구나…. 나는 밥맛을 잃고 식당을 나왔다.


비난에서 자유로운 통치자는 없다. 하지만 성별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전직 남성 대통령들은 “쥐XX” “살인X” “돌XXX”라는 말까지 들었어도 덜(?) 거북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외관이 여성이다 보니 정부 비판과 여성 비하가 뒤섞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신 “~ㄴ”으로 불리니까 ‘같은 여성’으로서 민망했다. 굳이 “~ㄴ”을 사용해야 할까. 대체할 만한 언어는 없나. 나는 전에도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는 언설을 비판한 적이 있다(동물 모독). 저잣거리 민심에도 약간의 교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며칠 후 비슷한 상황. 이번에는 해임된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외모, 지능 이야기부터 욕설이 이어졌다. 역시 괴로웠다. 특히, 외모에 대한 조롱은 ‘같은 아줌마로서’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취에 코 막은 윤진숙 해수부 장관(출처: 연합뉴스)


처음부터 자질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난달 31일 여수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당시 “GS칼텍스가 1차 피해자”라는 사고방식에는 할 말을 잃었다. ‘해양’과 ‘수산’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장관이었다. 같은 (최)고위 공직자지만 박 대통령과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한 욕설은 경우가 다르다. 대통령의 실정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지위가 낮은 단어’로 욕을 먹은 반면, 전임 장관은 스스로 ‘여성답게’ 행동함으로써 비난을 자초했다.


대표적인 행태가 웃음이다. 아무데서나 이유 없이 혼자 웃는 여성. 그녀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질문과 질타에 웃음으로 대처하다 ‘웃지 말라’는 경고까지 받았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분노했다. 이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정 한복판에서 중대 업무를 처리하는데 수줍게 웃거나 희죽거리는 남성은 없다.


사실 그녀의 웃음은 낯설지 않다. 구조적 현상이다. 남성 상사가 부하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일부 남녀의 태도는 다르다. 대체로 남성은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로 간결하게 답하는데, 간혹 여성 직원 중에는 울거나 웃거나 애교를 부리는 등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공적 공간에서 만나는 여성의 옷차림을 보면 복잡한 생각이 든다. 일부 젊은 여성의 짧은 하의, 속옷인지 잠옷인지 분간이 안 가는 웃옷, 휘날리는 긴 머리는 공부나 업무에 적합한 드레스 코드가 아니다. 이러한 일부 여성의 외모 관리는 남성 중심 문화의 산물이지만, 기본적으로 이중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노출을 환호하면서도 동시에 얕잡아 본다. 여성스러움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때와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그런 차림은 의류의 1차적 기능이 피부 보호임을 잊은 처사다).


위의 사례들은 여성의 ‘자질 부족’처럼 보이지만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사회생활의 행동 기준은 남성 문화가 정한다. 남성 역시 성희롱과 폭력적 언사 등 부적절한 수준을 넘어, 불법 행위를 일상적으로 저지른다. 다만, 남성 중심 사회이므로 남녀가 똑같이 잘못해도 여성의 언행은 더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여성 장관은 극소수다. 그나마 성별, 지역 등에 따른 안배 여론에 밀려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은 인구의 51%로 ‘소수’도 아닌데 할당제의 대표적 수혜자로 여겨진다. 사회적 약자 집단에서 한 사람만 대표로 뽑아 구색을 맞추는 것을 ‘토크니즘(tokenism)’이라고 하고, 해당 인물을 ‘토큰’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보수 여성 리더십의 롤 모델이 되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다. 백인 남성 정부에서 흑인 여성 한 명의 상징성은 막강했다. 정치적 입장은 군수(軍需) 재벌보다 극우적이었지만 그녀는 부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똑똑했다’.


최악의 경우는 역대 정권이 선호해 온, 지역이나 학벌 안배 몫의 극소수조차 가장 개념 없고 불성실한 사람을 쓰는 것이다. “‘~출신’을 썼더니 이 모양이다. 그들은 차별받는 게 아니라 원래 무능하다.” 윤진숙 전 장관은 이를 증명했다.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라도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여전히 필요하다. 좀 더 진화된 사례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tobrazi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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