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영화 <추격자>의 무대는 망원동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의 살인현장이다. 그런데 실제 유영철이 범죄를 저지른 곳은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영화 촬영지는 서대문구 북아현동이다. 망원동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망원동 주민들의 항의도 거셌다. 영화가 망원동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왜 하필 망원동이었을까. 나홍진 감독은 “망원동을 서른이 넘어서 처음 들었다. 존재하는데 존재를 모르고 있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망원이라는 글자로 연상되는 의미도 있었다”고 했다. 망원동은 한강변 명소인 망원정에서 유래한다.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정자에 오르면 ‘멀리 산과 강을 잇는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영화 <추격자> 스틸컷

장년층에게 망원동은 ‘물난리’로 기억된다. 1984년 집중호우로 유수지 수문이 붕괴되고 수천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한 사건 때문이다. 당시 망원동은 풍납동과 함께 큰 침수피해를 입었다. 이후 침수방지 시설이 갖춰졌지만 여름철만 되면 망원동은 침수우려지역으로 방송을 탔다. 오명은 오랫동안 그대로였다. 그러나 사람살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몇 해 전 보컬그룹 ‘장미여관’의 육중완은 MBC의 <나 혼자 산다>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망원동을 누볐다. 지갑이 가벼워도 당당할 수 있던 곳, 서민들도 기죽지 않고 서울살이를 할 수 있던 곳이 망원동이었다.

망원동이 홍역을 앓고 있다. 2~3년 전부터 관심을 끌면서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현상이다. 가로수길, 상수동, 연남동, 경리단길 등을 휩쓴 자본이 망원동에 몰려들고 있다. 망원동의 포은로와 망원시장 일대는 음식점과 카페, 프랜차이즈 커피숍 등이 들어서고 젊은이들이 모이면서 ‘망리단길’이란 새 이름이 생겼다. 망원동과 경리단길의 합성어다.

망원동에서는 경리단길에서처럼 임대료가 오르고 기존 영세사업자는 쫓겨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망원동 주민회는 ‘망리단길 싫어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예전처럼 따뜻하게 살고 싶다는 표현이다. 반짝 떴다 지는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오래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