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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도모할 때 복장부터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운동을 결심하자마자 제일 먼저 트레이닝복과 조깅화를 깔맞춤해 구입하는 것처럼. 새로 구입한 운동화가 아까워서라도 더 열심히! 더 완벽히! 새 의상은 그렇게 결의를 표현한다. 하지만 내 경우 그 의지의 상징물들은 거의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물함에 처박혔다. 요가원 국선도장 문화센터 스포츠센터. 차마 수거하지 못한 결기의 복장들.
또 어떤 사람은 이름부터 짓는다. 면허증도 따기 전에 구입할 차의 이름을 짓거나, 글을 쓰기도 전에 필명부터 정하거나. 물론 나도 습작시절 필명을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이보다 더 좋은 필명은 없을 거라는 누군가의 충고에, 팔랑팔랑 귀를 접었더랬다.
라만차에 사는 키모시기라는 시골양반도 이름에 집착했다. 기사가 되기로 결심하자마자 그는 자신이 타고 갈 말의 이름을 바꾼다. 원래 이름은 로신. 문자 그대로 여윈 말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도 병치레를 많이 해서 여위고 늙어빠진 말, 기사의 말로써는 빠져도 너무 빠진 몰골. 그는 거기에 단어 하나를 붙여 기사의 말로 재탄생시킨다. 안테(ante). ‘여윈 말’을 과거의 일(ante)로 바꾸고, 세상의 모든 로신들 중에 첫째 가게(ante) 만드는 바로 그 이름. 로, 시, 난, 테! 그 이름을 짓는 데 나흘이 걸렸다. 이름은 그렇게나 중요했다.
말의 이름을 짓는 데 나흘이 걸렸으니, 기사의 이름을 짓는 데는 적어도 두 배의 시간이 필요할 터. 여드레 만에 그의 이름이 완성되는데, 우리 모두가 아는 돈키호테(don quijote)다. 돈은 경칭이고 키호테는 갑옷 중에 허벅지 안쪽 부분에 대는 갑옷을 지칭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도 절대적인 이름이 남았으니, 기사라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존재, 기사의 연인, 공주님. 연인의 이름은 정말정말 중요했다. 돈키호테나 로시난테와 어울릴 만한 것으로, 음악적이면서 신비롭고 의미심장하게 들릴 만한 이름. 연인의 이름을 짓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걸 떠올려봐도 딱 하나의 이름만 남으니까. 둘시네아(dulcinea). 달콤한 것(dulce)에서 파생된, 아름다움의 꽃, 둘시네아.
이름을 바꾸는 일과 의상을 갖춰 입는 일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변신에 대한 욕망이다. 그에 걸맞은 의상을 입고 그에 걸맞은 이름으로 호명되길 원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일. 이제부터 나는 유도인이다, 이제부터 나는 라이더다, 이제부터 나는 기사이니, 그렇게 바라보고 그렇게 불러 달라. 선언과 요청. 그렇게 새로운 삶은 시작된다.
지금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새로운 생활을 위해 우선 식당의 이름부터 지었다. 내 이름을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호칭은 바뀌었다. 사장님 대표님 셰프님 주인장 주방장…. 일반적으로 사장님과 대표님이라 부르고, 셰프님이라는 호칭은 주로 식품납품업체 사람들이 많이 쓴다. 멋지게 명명하면 오너 셰프, 다르게 표현하자면 식당주인이자 주방장, 좀 더 적확히 표현하자면 주방아줌마다.
모든 호칭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업주님이라는 호칭이었다. 업주님이 결정하십시오, 업주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업주님. 그렇다 나는 업주님이다. 업주님 앞에서 호칭은 먼지만큼도 중요치 않다. 새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특히나 자영업자의 업주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요리를 하고 싶었든, 누군가에게 밥을 해 먹이고 싶었든, 이상이 그 무엇이었든 간에, 현실은 업주님이다. 아무리 많이 듣고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었다 하더라도, 내가 상상하고 꿈꾸었던 삶과의 간극은 좀처럼 줄지가 않았다.
식당을 준비하면서 많은 자영업자 선배들의 도움을 받았었다. 그중에 합정동 인근에서 빵집을 하던 친구는 이런저런 조언 끝에 한숨처럼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내가 좋은 자리 구하려고 골목골목 안 다녀본 데가 없는데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피로 물든 길이구나, 나는 지금 자영업자들이 흘린 피를 밟으며 걸어가고 있구나, 그러니까 웬만하면 이 길에 들어서지 마라.
그땐 그냥 겁주려는 소리로 들었다. 몇 주 전에 그녀가 빵집을 접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지 넉 달이 되어간다. 그동안 알게 된 것과 느낀 것들을 모두 말할 수는 없다. 멋지고 근사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운동복만 갖추고 나면 몸짱이 될 거라고 믿은 것도 아니다. 무엇이 실패인지 무엇이 성공인지도 사실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저 어떤 피를 흘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몸에서 피가 흘러나가는 것만큼은 명확히 감지되니까.
그 유명한 돈키호테 기사도 결국 처참한 몰골로 귀향한다. 고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서 그는 목동의 삶을 잠깐 꿈꾼다. 그리고 그답게, 기사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생각해냈듯 목동에게 어울리는 이름부터 먼저 생각한다. 돈키호테 기사가 아니라 목동 키호티스. 바르시노라는 개와 부르톤이라는 개가 꼬리를 흔들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위를 하고, 목동 판사노와 목동 쿠리암브로와 목동 카라스콘이 함께 사랑의 시를 읊는 삶.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삶을 사는 목동 키호티스. 실패한 돈키호테 기사가 잠시나마 위안을 받고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작명의 시간. 꿈꾼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때 그의 충실한 벗 산초의 상상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산초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하도 쪽쪽 빨아 반짝반짝 빛나는 숟가락이다. 자질구레한 목동의 물건들에 둘러싸인 산비탈의 오두막과, 그 안에서 막 구운 보들보들한 빵이 아니라 빵 부스러기와 염소젖으로 연명하는 삶. 그의 이름이 산초 판사노가 되든 그의 딸 이름이 산치카가 되든 상관없이, 그가 상상해내는 목동의 삶은 의무와 책임과 고난들에 기초한다. 어찌나 현명하신지. 그렇다고 산초가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왕 목동이 된다면 재치 있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목동이 될 거라고 자신만만한 걸 보면 말이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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