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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져 있더라.”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이 남긴 말이다. 최근 ‘할담비(할아버지+손담비)’로 불리며 전국구 스타로 뜬 지병수씨(76)도 이런 기분 아닐까. 지난달 24일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지씨는 손담비씨의 댄스곡 ‘미쳤어’를 춤과 함께 열창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온라인에 올라온 동영상은 조회수가 200만을 넘어섰다. 이후 <연예가중계>에서 손씨와 실제 듀엣 무대를 선보였고,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지씨는 “아이돌 노래를 좋아한다. 티아라, 카라, 박진영 ‘허니’도 좋아하고, 특히 손담비 노래는 하도 많이 연습해서 잘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방송된 KBS 1TV <전국노래자랑> 종로구편에 출연해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불러 화제가 된 지병수씨(76)가 28일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 기자 jeongk@kyunghyang.com

쌍방향 소통 프로그램인 MBC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 V2>에 배우 강부자씨(78)가 도전장을 던진 건 뜻밖이었다. 문자메시지도 못 보낸다는 그는 “60년 가까이 할머니 역할, 아줌마 역할만 맴돌았는데 나 자신을 변화시켜보려고 나왔다”고 했다. 강호의 고수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로 자웅을 겨루는 마리텔에 들고 나온 무기가 축구라는 점은 의외성을 더했다. 오랜 ‘축덕(축구 덕후)’을 자임한 강씨는 등번호만 보고 선수 이름을 척척 맞히는가 하면, 해외 축구에 대한 정보도 술술 풀어냈다. 축구계 라이벌 호날두와 메시를 두고는 “호날두는 축구를 신사가 하는 것처럼 하고, 메시는 농부처럼 한다”고 비유했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해머니(해외 축구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지병수·강부자씨처럼 적극적이고 왕성하게 사회·문화 생활을 하는 고령자들을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 일컫는다. 이들은 대중문화계의 블루칩이자, 유통업계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각광받는다. 하지만 이 같은 트렌드의 이면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노인빈곤이라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1인방송 도전은커녕 1년에 영화 한 편 보기 힘든 노인들이 적지 않다. 노인빈곤을 ‘이미 늙은’ 사람들만의 문제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노인 소득보장체계를 보다 정교히 설계하고, 나아가 현 청장년 세대의 빈곤과 소득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하면 ‘미래에 늙을’ 이들은 더 고달파질 터다. 더 많은 ‘시니어’가 ‘액티브’해질 때 공동체에도 활력이 넘칠 것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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