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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에두아르 샤반이 중국 지안에서 발견한 산연화총을 학계에 보고한 이후 100기가 넘는 고구려 벽화고분이 확인됐다. 그중 34기의 벽화가 사신도다. 사신(四神)이란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를 가리킨다. 고구려인들이 왕·귀족의 무덤을 조성하면서 사신도를 그려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사신도에는 묘 주인이 죽은 뒤에도 생존 당시와 똑같은 삶을 펼친다는 영혼불멸의 사상이 담겨 있다. 고대 동양에서는 청룡·백호·주작·현무 등을 벽사와 수호, 상서, 영원, 청정을 가리키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겼다. 예를 들어 동 청룡은 상서로운 조짐으로 간주된다. 생명과 불멸의 상징색인 파란색과, 신비한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뜻하는 용이 합한 게 청룡이라는 것이다. 청룡은 불멸의 힘을 갖추고 비구름을 거느리며 만백성을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서 백호는 사악한 잡귀를 몰아내는 벽사(피邪)를 주관하는 영물이다. 호랑이가 평소 보여주는 용맹성을 묘 주인의 사후에도 발휘한다면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백호는 피장자를 수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남 주작은 피장자의 영혼을 저승계와 연결해주는 새이다. 피장자의 장생불사 염원을 담고 있다. 북 현무 역시 묘 주인의 영혼을 수호하는 신령스러운 짐승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거북과 뱀이 함께 등장한다. 거북이 남성의 상징인 뱀으로부터 생명의 씨를 받아 어둠 속에서도 생명을 잉태한다는 뜻이다. 즉 사신도에는 육체는 비록 죽었지만 사신의 신묘한 힘을 빌려서라도 그 영혼만큼은 불멸해야 한다는 강력한 희망을 담고 있다. 생전에 그렇게라도 벽화를 치장해놔야 비로소 안심했다는 이야기다.


국정원의 새로운 엠블럼_국정원

국정원이 18년 만에 엠블럼을 ‘청룡과 백호가 태극 문양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변경했다. 고구려 벽화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간첩조작사건 등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하겠다는 뜻이라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다만 공연한 노파심이 생긴다. 지배층의 영원불멸을 위한 청룡·백호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신이란 원래 우주의 사방 질서를 지켜 하늘과 땅과 사람을 조화롭게 만드는 수호신이다. 부디 시민을 위한 청룡·백호이기를 바란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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