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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은 ‘길이 도시의 핏줄이라면 광장은 정신’이라고 했다. 

광장의 유래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agora)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로 항구 옆에 시장터로 발생한 아고라는 종교·정치·사법·상업·사교가 행해지는 사회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아고라처럼 ‘기능’이 아니라 ‘넓게 비어 있는 공간’으로 광장이 등장한 것은 고대 로마의 포럼(forum)이다. 로마제국은 유럽 지배지에 맨 먼저 ‘레기온’으로 불리는 군단 주둔 캠프를 설치했다. 로마에서 오는 길과 직교하는 길을 새로 만들고 그 교차점에 포럼을 두어 군단캠프의 중심공간으로 삼았다. 로마군단 캠프가 지속되어 도시로 발전한 것이 오늘날 유럽의 파리, 런던, 빈, 프랑크푸르트 등이다. 이들 도시의 원도심인 시테섬, 시티지역, 그라벤 거리, 뢰머광장이 모두 로마군단의 포럼이었다. 

서구에서는 도시 조성과 발달이 광장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광장의 위치나 형식, 지위로 도시의 성격이 규정되었다.

이탈리아 프랑코 만쿠조는 “대중에 의해 정의되는 유일한 물리적 공간”이 광장이라고 했다.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발언하려는 시민들의 점유로 도시의 ‘빈 공간’은 비로소 정치공간이자 살아 있는 광장이 된다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7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과 레드카드를 들고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2000년대 발생한 효순·미선 촛불집회, 월드컵 거리응원, 광우병 촛불시위 등을 거치면서 비로소 “사회적·공동체적 동질성을 확인하고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장소”로서 광장이 살아났다. 절정이 2016~2017년 촛불집회에서 정치적, 축제적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광화문광장이다. 광장은 시민에 의해 성장하며, 시민을 성장시키는 순환적인 성질을 지닌다는 것을 확인했다. 드디어 광장은 밀실에서 소곤대던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울려퍼질 수 있는 열린 거실이 되었다.

광화문광장에 주둔지를 설치하려는 우리공화당의 ‘천막 게릴라전’이 집요하다. 불법을 따지기에 앞서 광장에서 추방된 ‘탄핵 대통령’의 부활에 목매다는 극우 정당의 광장 침탈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광장의 주인공은 어느 권력자가 아닌 시민, ‘권리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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