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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와 에이즈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가 친절하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신체 내 면역세포를 파괴하는 원인 병원체이고 HIV에 감염된 사람이 적절한 관리를 하지 않을 경우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환자가 될 수 있다. 즉 에이즈는 HIV 감염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을 말하며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HIV에 감염되었다고 바로 환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이제는 감염 이후에도 30년 이상 생존 가능한 ‘만성질환’ 정도로 간주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HIV 감염인은 미국 프로농구 선수였던 매직 존슨일 것이다. LA 레이커스에서 12년 동안 뛰면서 MVP를 세 차례 수상했던 그는 1991년 HIV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발표와 함께 급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슨은 건강하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2년에는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고, 1996년에는 현역으로 잠깐 복귀해서 32경기에 출전했다. 그와 함께 올림픽에 출전했던 조던이나 바클리 등은 매직 존슨과 함께 땀을 흘리며 농구를 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함께 운동하고 샤워한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는 많이 다른 듯하다. 일단 에이즈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5년 실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에이즈는 제대로 치료하면 20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라는 항목이 맞다고 답한 정답 응답자는 56%에 그쳤고, “에이즈 감염인과 키스를 하는 것만으로도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 “모기에 물리는 것만으로도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라는 항목이 틀렸다고 옳게 답한 비율도 각각 51%와 48%에 그쳤다. 같은 내용의 2012년 조사에서는 정답자가 각각 61%, 61%, 43%였으니 에이즈 관련 지식이 나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HIV는 인체를 벗어나면 곧바로 비활성화되거나 사멸한다. 심지어 보균자와의 한 차례 성관계로 HIV에 감염될 확률도 0.01~0.1% 정도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한국인은 HIV 감염인과의 악수조차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12일, 프로축구단 대전시티즌은 한 브라질 1부 리그 선수의 영입을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했다. 메디컬테스트 과정에서 “에이즈 양성반응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구단의 설명이었다. 발표만 보면 마치 중증 에이즈 환자인 것 같다.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를 구별하지 못한 발표였다. 위법 소지마저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 따르면 HIV 검진 결과는 오직 본인에게만 알릴 수 있지만 구단은 그 결과를 입수해서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감염인의 진단에 참여했거나 기록을 관리하는 사람은 감염인 정보를 누설하지 못하게 돼있다.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구단(사용자)은 진단 결과를 이유로 선수(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문구도 명문화돼있다. 뒤늦게 위법 소지를 깨달았는지 다른 변명을 했으나, 제대로 된 사과는 없었다.

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인권에 대한 무딘 감수성을 보인 것은 대전시티즌 구단이었으나,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도 무책임하기는 뒤지지 않았다. 일부 매체는 해당 선수의 이름과 사진까지 내걸었고, 대부분 이를 ‘해프닝’처럼 보도하는 데에 그쳤다. 왜 매직 존슨은 되는데 이 축구 선수는 안 되는가? 왜 브라질에서는 뛰는데 한국에서는 불가한가? 구단은 어떻게 HIV 검사 결과를 입수했나? 해당 정보는 누가 누출했는가? 이 질문들을 진지하게 던지고 성실하게 답한 보도는 없었다. 하긴 소나무 재선충병을 ‘소나무 에이즈’라 부르며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앞장서서 강화시켜온 것이 우리나라 미디어였다.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자리의 사람들도 에이즈에 대한 편견 확대에 앞장서곤 한다. 2016년 자료에 따르면 감염 원인을 ‘동성 간 성접촉’이라고 보고한 사람의 비율은 28.3% (‘이성 간 성접촉’이라고 답한 이는 35.8%, 나머지는 무응답)였지만, 에이즈를 ‘남성 동성애 병’으로 정의한 후 이를 격렬하게 공격하거나 조롱함으로써 자신의 보수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는 정치인, 종교인, 교육자들이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의 HIV 감염인들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심각한 비난과 배제를 견디며 살고 있다. 자살 충동, 소문에 대한 두려움 등 강한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HIV 감염인의 비율은 독일보다 세 배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편견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우스갯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영화 대사처럼, 인간은 못 되더라도 괴물이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전구단과 언론사들의 사과부터 시작할 일이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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