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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경향신문에 ‘다문화가족 가정폭력, 인권위의 엉터리 통계’라는 제목으로 설동훈 교수의 기고문이 게재되었다.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있는 기고문이었다. 설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는 비확률표집 방법인 ‘눈덩이 표집’ 방법을 활용해 표본을 수집했기 때문에, 이 보고서의 통계는 “어떤 형태의 일반화도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눈덩이 표집’ 방법으로 작성된 설 교수의 학위논문에 나와 있는 통계도 “어떤 형태의 일반화도 불가능한 엉터리 통계”인가? 

설 교수는, 결혼이주여성의 절반에 가까운(42.1%) 사람이 가정폭력을 경험하였고 ‘폭력위협’ 피해율이 38.0%에 달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이하 ‘인권위보고서’) 통계가, 여성가족부의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이하 ‘여가부보고서’)에서 국내 여성의 ‘신체적 폭력’ 피해율이 3.3%라거나 다른 조사에서 도출된 통계 수치에 비해 “유독 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권위보고서가 엉터리라고 한다. 

출처:경향신문DB

그러나 설 교수는 ‘비교의 등가성’을 유지하지 않은 채 두 조사결과를 비교하였다. 여가부보고서에서는 가정폭력을 신체적 폭력과 정서적 폭력 등으로 분류하면서 ‘때리려고 위협하는 행동’과 ‘상대방의 물건을 부수는 행동’을 정서적 폭력으로 분류하고 있다. 반면 인권위보고서에서는 “나를 때리거나 때릴 것처럼 위협을 가했다”는 내용의 설문 문항을 ‘폭력위협’으로 분석하였다. 두 보고서의 통계를 제대로 비교해 보려면, 인권위보고서상의 ‘폭력위협’ 문항의 통계 수치를, 여가부보고서상의 ‘중한 신체적 폭력’, ‘경한 신체적 폭력’, ‘때리려고 위협하는 행동’, ‘상대방의 물건을 부수는 행동’ 문항의 수치를 모두 더한 수치와 비교해야 등가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비교의 등가성’과 관련해 또 다른 흠결은, 가정폭력 경험기간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인권위보고서에서는 “한국 체류 중” 남편이나 남편 가족들이 행한 ‘폭력위협’ 문항에 대한 답변을 통계로 잡았다. 반면 여가부보고서에서는 ‘지난 1년간’의 가정폭력 경험 통계 외에 ‘1년 이전’ 시기의 통계가 별도로 도출돼 있다. 그런데 설 교수는 여가부보고서상의 ‘지난 1년간’의 ‘신체적 폭력’ 문항의 통계만 콕 집어서 3.3%라고 인용하고 있다. 

두 보고서상 폭력의 분류 범위와 경험시기를 비슷한 조건으로 환산한다면, 국내 여성들의 ‘폭력위협’률도 33.7%로 높아진다. 설 교수 기고문에서 인용한 다른 2개의 조사보고서의 통계 수치도 ‘비교의 등가성’이 확보되지 않는 ‘견강부회’성 통계 인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인권위보고서의 통계 수치가 “유독 튀”는 수치라는 설 교수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 아닌가? ‘비교의 등가성’이 상실된 통계비교에 터잡은 설 교수의 기고문이 엉터리라는 추론이 도출되는 것 아닌가?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피해 상황은 실제로 매우 심각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다문화가정 내 폭행으로 검거된 사람이 전년도에 비해 약 46% 증가했고, 올해도 계속 증가 추세다. 그런데도 설 교수는 이주인권단체들이 피해 상황을 과장하고 있다고 섣불리 단정하고 있다. 설 교수에게 기대한다. 자신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로 인해 상처 입게 된 결혼이주여성들과 이주인권단체 활동가들, 국가인권위원회에 공개 사과하는 용기를 발휘할 것을.

<석원정 |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위한모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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