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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낙태죄 폐지

opinionX 2017. 11. 1. 10:52

가톨릭 국가에서 낙태는 중죄(重罪)에 속한다. 낙태를 죄악시하는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10월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경우라도 낙태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할 수 있는 ‘낙태금지법’ 시행을 추진했다. 그러자 여성들이 들고일어났다. 검은 옷을 입고 광장에 모여 “나의 몸에 자유를 달라” “나의 자궁은 나의 선택”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폴란드 정부는 낙태금지법 시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낙태를 금지하는 국가의 여성들은 임신중절이 가능한 지역을 찾아간다. 12주 이내의 낙태만 허용하고, 의사 처방전을 받아야 ‘미프진’(자연유산 유도제)을 구입할 수 있는 미국에선 임신여성들이 평균 27㎞의 낙태여행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연간 700여명의 임신여성들이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으로 낙태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과 이스라엘, 일본, 칠레, 핀란드 등 9개국을 제외한 25개국에선 임신부의 요청에 따라 낙태가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합법적인 낙태를 여성의 기본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선 낙태죄가 형법 제269조에 명시돼 있다. 임신여성이 낙태시술을 받으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모자보건법상 낙태시술은 정신장애, 전염성 질환, 성폭행·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 특수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그럼에도 낙태는 음성적으로 횡행한다. 정부 연구조사를 보면 연간 17만~20만명의 태아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낙태죄 폐지를 청원한 시민들이 한 달 만에 23만명을 넘어서면서 ‘낙태 합법화’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청와대는 청원 참여자가 30일간 20만명이 넘으면 장관이나 수석급이 공식 답변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혼 임신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것은 사회적 냉대를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혼 여성도 아이를 낳아 기를 만한 사회·경제적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면 낙태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낙태로 사라지는 생명의 절반만 구해도 연간 50만명의 출생아수를 유지할 수 있다. 낙태죄 폐지 논란을 떠나 비혼 출산과 신생아 양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절실한 때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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