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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노인의 나이

opinionX 2017. 3. 7. 10:07

조선시대에는 일흔이 되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벼슬(仕)에서 그만둔다(致)는 뜻에서 ‘치사’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정년(停年)’인 셈이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원로가 나이 일흔이 넘어 치사하면 임금은 지팡이와 의자를 선물하고 큰 잔치를 베풀어줬다. 조선 후기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 화가 이인문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 걸작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의 록 밴드 롤링 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는 73세이던 지난해 29세인 다섯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65세 때 세상을 뜬 화가 고갱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속속들이 보인다”고 했다. 늙는다는 것은 신체연령이 많아졌다는 것일 뿐 세상을 보는 시야는 깊고 넓어진다는 의미다.

출처: 경향신문DB

미국 미네소타의학협회가 정의한 ‘노인의 기준’도 흡사하다. ‘스스로 늙었다고 느낀다. 이 나이에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한다.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노인을 구분짓는 잣대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뜻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사회에서도 60대는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 70세가 넘어도 젊은 사람 취급받기 싫다며 경로당에 가길 꺼리거나 지하철 경로석도 눈치를 살피며 앉는다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어제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현재 65세인 노인 기준연령을 70세 등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리면 연간 3조원가량의 재정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노인들의 ‘삶의 질’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노인기준 연령을 70세로 높이면 65~69세는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고, 장기요양보험, 지하철·전철 무료 승차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국민연금 수급연령도 늦춰진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됐다고 해도 ‘은퇴는 했지만 노후 복지를 못 받는’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노인 기준연령 상향조정을 공론화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노인이 되긴 쉬워도, 노인으로 살아가기엔 버거운 세상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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