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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을 읽다보면 “여보세요?” 하며 뛰어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착신이 끊기면 다시 걸면 되는데 말입니다. 횡단보도 녹색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황급하게 건넙니다. 정작 건너고 나선 걷습니다.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기만 하면 일어나 짐 꺼내고 통로에서 웅성거립니다. 어차피 완전히 멈춰야 게이트가 열리는데 말이죠. 이처럼 사람들은 이유도 없이 서두릅니다.

충청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충청도다운 익살입니다. 그리고 속담에도 ‘총총들이 반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총총’은 편지 말미에 많이 쓰는 ‘이만 총총’과 같은 ‘(마음)바쁠 총(悤)’입니다. 급하게 담다가는 흘리는 게 태반이라는 뜻입니다. 서두를수록 놓치고 잃어버리는 게 많아집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우리는 잠시도 차분히 기다리지 못합니다. 기다리기는 하지만 그저 동동거리며 시간을 참아낼 뿐입니다. 어느 버스기사는 교통정체나 정지신호 때 느긋하게 연필을 깎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목욕탕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걸려 있다죠. 그들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일 겁니다. 초조해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으니까요.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짐승은 기다릴 줄을 모르지.” 여기서의 기다림은 ‘기다려!’ ‘먹어!’처럼 외부제한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기다려야 할 때임을 알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몇 십 초를 여유로 기다릴 줄 안다면 아마 인생의 때도 기다릴 줄 알 것입니다. 녹색불은 때 되면 켜지고 정체도 언젠가 풀리기 마련입니다. 안달한다고 내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이들의 얼굴은 언제나 온후합니다. 나룻배 늦는다고 강 건너가 배 타려 하시나요? 잠시만요. 나룻배는 아직이지만 주변 풍광은 참 멋지지 않습니까?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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