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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전 총리는 대한민국 ‘1호’ 기록이 많다. 외교관 여권 1호에 초대 주미대사 및 대통령 특사를 역임했다. 서울 명륜동 그의 생가에는 여권번호 ‘0001’이 찍힌 여권이 보존돼 있다. 이 여권에는 붓글씨로 ‘바티칸 파견 대한민국 대통령 특사’라고 적혀 있다. 한국이 처음 대통령 특사를 보낸 나라가 교황청이었던 것이다. 여기엔 비화가 담겨 있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합법정부로 인정받으려면 유엔 총회의 승인이 필요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천주교를 대표하는 무소속 장면 의원을 특사로 임명해 교황청의 도움을 얻고자 했다. 교황청은 남한 과도정부 시절인 1947년 가장 먼저 특사를 보내 최초로 국가 승인을 해준 인연이 있었다. 교황청은 당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며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다. 약소 신생국가로 유엔 58개 회원국을 설득하기엔 국력이 미미했던 한국으로선 교황청의 도움이 절실했다. 이 대통령의 포석은 주효했다. 교황청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막후에서 한국 지지 활동을 벌였고, 마침내 한국은 뜻을 이뤘다.

바티칸과 한반도의 각별한 인연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교황청은 한국의 전후 복구사업을 지원했고, 지금은 북한에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족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북한은 한국 천주교 측에 교황의 방북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올해는 교황청이 한국에 특사를 보낸 지 70년이 되는 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기념으로 교황청에 특사를 파견했다. 한국에 대한 교황청의 관심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에 감사하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 한 신문이 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남북정상회담 중재를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교황이 2014년 미국과 쿠바 국교 정상화 협상을 중재한 바 있어 관심을 모았지만 금방 오보로 드러났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하는 것은 분위기에 맞지 않아 보인다. 설령 정상회담을 추진하더라도 남북이 직접 협상을 하는 게 정상이다. 남북은 그런 역량과 경험을 충분히 갖고 있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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