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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명령하는 대법원 판결로 한·일관계에 파장이 불가피해졌다. 1965년 국교정상화와 양국관계의 근간인 한일청구권협정 및 한일기본조약의 취지를 부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했고, 고노 다로 외무상도 “한·일 우호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저부터 뒤엎는 것”이라고 했다.

“마침내 이겼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13년 만에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최종 확정된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원고 4명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이춘식씨가 소감을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김규수씨의 부인 최정호씨.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일본 정부의 반발은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사법부 판단이지만 한국이 또다시 ‘과거사의 골대를 옮겼다’고 여길 소지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하면서 민관합동위원회에서 청구권 교섭과정을 검토한 결과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결론지었고 이후 정부는 이를 유지해왔다. 앞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말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밝히면서 ‘파기’ 논란이 일었던 것까지 감안하면 ‘한국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약속을 뒤집는다’는 비판을 들을 단초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거론하면서 국제 여론전을 펼칠 경우 결코 유리하지 않다. 일본 내에서 또다시 ‘혐한’ 분위기가 고조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게 된 셈이지만 딱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의 기존 입장과 판결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면서도 한·일관계가 외교분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낙연 총리가 이날 담화에서 “제반 요소를 종합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 악화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도 장애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판결이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상황관리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정부에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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