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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망우리 역사여행

opinionX 2013. 4. 2. 10:25

유인화 논설위원

 


1960~1970년대 많은 초등학생들이 왕릉으로 소풍을 갔다. 예종·장희빈 등이 묻힌 서오릉, 9명의 조선 임금이 묻힌 동구릉 등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공원으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같은 무덤이어도 8500여기의 묘가 있는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는 사뭇 다른 추억의 풍경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산책로와 약수터가 있는 멋진 공원이지만 ‘근심을 잊는다(忘憂)’는 뜻의 망우리 공동묘지는 10여년 전만 해도 일반인에겐 어둡고 무서운 이미지로 각인됐었다. 서울에 남은 ‘마지막’ 공동묘지로서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진한 재미와 오싹함을 동시에 선사하기도 했다.


하얀 소복의 여인이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가에 피를 흘리며 나타나는 공포의 장소라거나, 망우리를 지나던 택시에 탄 승객이 알고 보니 죽은 이었다는 택시괴담, 항일운동가들의 무덤에서 우는 소리가 났다는 식의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러시아·이탈리아·프랑스 등 도심에 위치한 유럽의 공동묘지는 아름다운 비석과 동상 등으로 가득해 마치 야외 조각전시장 같지만 우리나라 공동묘지는 음산한 공간이었다.


망우리 공동묘지 한식 성묘객(1968년)


1933년부터 공동묘지였던 망우리 공원묘지가 역사를 배우고 인생을 성찰하는 교육장으로 변신한다. 서울시설공단은 오늘부터 오는 10월까지 매주 수요일 초등학교 4년생 이상 30명 내외를 대상으로 ‘묘역따라 역사여행’ 프로그램을 개설한다. 신청자들은 자살 예방교육을 통해 자아성찰을 한 후, 망우리에 묻힌 독립운동가·시인·학자·정치가 등 23명의 유명인사 묘역을 걸으며 향토문화해설사로부터 그들의 활동과 시대상황 등을 들을 수 있다. 매월 셋째 토요일에는 일반인 대상으로 보다 진지한 답사가 마련된다. 이승만 정부에서 간첩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죽산 조봉암, 만해 한용운, 아동문학가 방정환, 화가 이중섭,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가수 차중락,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세월이 가면)의 시인 박인환 등의 삶과 민족사를 접할 수 있다. 지난해 가을 독일 베를린의 묘지 투어에서 힌트를 얻은 이 프로그램은 민족사랑, 예술사랑 등 두 개 코스로 구성되는데, 이미 9월까지 예약이 찼다고 한다. 오는 5일 한식에 가족의 묘를 찾는다면 후손에게 고인의 생각과 삶을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려주며 추모의 시간을 가져봄직하다. 그 또한 ‘묘역따라 역사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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