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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 고대법학전문대학교 교수


 

최근 SK브로드밴드(구 하나로텔레콤)가 2008년 고객 600여만명의 개인정보를 마케팅사에 유출한 사건과 관련해 우선 2만여명에게 26억원이 넘는 손해배상금을 지급했다.


‘개인정보를 동의없이 이용(전용)하거나 제3자에게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법리가 우리 생활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는 사례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 인식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위기가 새롭게 나타났다. 바로 이통사들의 본인확인 서비스 제도 때문이다. 이통사들이 휴대폰 개통 시 고객들로부터 받은 이름과 주민번호를 이용해 여러 인터넷 업체들에 이용자 신원확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인터넷 업체가 이용자 신원확인을 위해 직접 이용자의 주민번호와 이름을 받아 신용평가사에 의뢰했다. 그런데 계속되는 대규모 정보유출로 국민의 불안이 늘어나자 지난해부터 법이 개정돼 정보통신업체들은 주민번호 수집을 하지 못하도록 되었다. 그러자 업체들은 이용자로부터 주민번호 대신 다른 고유표지를 받아서 신원확인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대체된 고유표지로 이용자의 휴대폰 번호가 등장한 것이고, 이용자가 사이버상으로 주장하는 신원과 실제 신원이 맞는지 확인해주는 역할을 주민번호를 보유하고 있는 이통사들이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휴대폰을 개통할 때 우리의 신원정보를 이런 목적으로 쓰라고 이통사에 준 것이 아니다. 부가서비스를 신청하거나 분실신고를 할 때 신청자의 신원확인에 쓰라고 제공한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는 수집 목적에 부합하게 사용해야 한다(법 제15조 및 18조). 이통사가 고객이 동의한 바 없는 목적으로 그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불법행위다. 


이동통신사 대리점 (경향DB)


또 이통사는 신원확인을 해주면서 고객 신원정보의 일부(예를 들어 청소년보호법상 본인 확인의 경우 내가 19세 이상이라는 사실)를 인터넷 업체에 제공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고객이 동의한 바 없는 것이다. 이통사가 인터넷 업체들에 자사 고객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인터넷 업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통사 고객들에게 제공토록 돕는 것은, SK브로드밴드가 자신의 고객들이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마케팅 회사들에 유출한 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SK브로드밴드 사건과 차이가 있다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망법’)이 ‘본인확인 업무’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망법은 그 업무를 합법적으로 하라는 것이지 개인정보보호법을 어기면서까지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아니다. 즉 이통사들이 본인확인 업무를 합법적으로 하려면 자신의 본인확인 목적으로 신원정보를 이통사에 제공한 사람들에 한해서만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통사들이 지금 당장이라도 신규 가입자들에게 필요한 동의를 얻어 이들에 대해서만 본인확인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인터넷 업체를 이용할 때 필요한 본인확인을 이통사들이 대신 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인터넷 업체들이 이통사들의 본인확인에 의지하는 순간 나는 명의도용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 제3자가 내 휴대폰과 몇 가지 개인정보만 가지고 있으면 나를 위장해서 다양한 인터넷 업체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통사들 스스로가 해킹당할 위험은 지난해 KT의 800만명 개인정보 유출로 드러난 바 있다. 명의도용에 의한 피해위험이 크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이미 지난해 8월 위헌 결정으로 법적 타당성이 거의 유실된 각종 강제적 본인확인 제도들에서 시작됐다. 헌재 결정도 밝혔듯이 바로 본인확인 제도 때문에 신원정보가 축적되어 해킹의 타깃이 되고 대량 개인정보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는 그 근본 원인인 본인확인제는 그대로 놔둔 채 이통사들만 주민번호의 수집과 이용을 할 수 있도록 특혜를 주어 본인확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통사들이 고객의 동의 없이 하면 본인확인 업무는 불법이다. 물론 그렇게 하라고 동의해 줄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외국 휴대폰을 가져와서 쓰거나 휴대폰 명의이전을 해보려던 사람들은 다들 내 고충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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