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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로 독일 통일의 분위기가 고조되던 때. 동독 총리 한스 모드로가 헬무트 콜 서독 총리를 독일 동남부 엘베 강가의 유서 깊은 도시 드레스덴으로 불러 정상회담을 열었다. 12월18일 콜 총리가 드레스덴에 도착할 때 수만명의 동독 주민들이 나와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얻은 콜 총리는 다음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프라우엔 교회 앞 광장에서 연설에 나섰다. 그는 환호하는 동독 주민들 앞에서 “역사적 순간이 그것을 허용한다면 나의 목표는 한결같이 우리 민족의 통일”이라며 통일에 대한 의지를 동독 땅에 처음으로 선포했다. 이후 독일 통일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이듬해 3월8일 동독에서 자유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10월3일 독일 통일이 완성됐다. 콜 총리는 비망록에서 “드레스덴 연설은 통일 과정에서 나의 가장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일기자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평양 5·1 경기장을 가득 메운 15만명의 북한 주민들 앞에서 한 연설이 화제다. 사상 최초로 남한 대통령이 북한 대중을 상대로 연설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은 13차례의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남한 대통령이 육성으로 민족애와 전쟁없는 한반도에 대한 절절한 의지를 밝히는 것을 들으며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연설 장면을 중계화면으로 본 남쪽의 많은 이들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고 평가한다.

콜 총리의 연설이 통일을 매조지 하는 것이었다면 문 대통령의 연설은 통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의 시작일 수 있다. 그래서 콜 총리의 연설에는 통일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문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통일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한다”고 했다. 통일은 문 대통령의 연설이 끝날 때 북한 주민들이 만든 카드섹션의 글귀 ‘온 겨레가 힘을 합쳐 통일 강국 세우자’ 속에 숨어 있었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비핵화와 영구적인 평화를 넘어 궁극적으로는 통일로 가는 길목이라는 것을 예시해주는 듯하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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