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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미스 함무라비

opinionX 2018. 7. 18. 11:22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기원전 1750년쯤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왕이 만들었다는 세계 최고(最古)의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에서 유래한 문구다. 이 법전은 282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제196조와 제200조에 각각 ‘다른 사람의 눈(이)을 상하게 했을 때는 그 사람의 눈(이)도 상해져야 한다’고 쓰여 있다.

이는 범죄 피해를 봤으면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한다는 의미의 ‘상응보복법’ ‘동해(同害)보복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의 야만스러운 보복 형벌의 상징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사실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죗값 이상의 사적인 과잉 처벌을 막자는 문명화된 취지를 담고 있다. 눈을 다쳤다고 가해자에게 무자비한 복수를 해선 안되고 그저 눈만 다치게 하자는 것이다. 법전은 절도, 폭행 등 형법은 물론 채권·채무 관계, 관세, 혼인, 이혼 등 민법, 상법, 가족법 등의 사안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선진적 법 체계다.

판사가 충분한 심리 재판시간을 확보해야만 좋은 판결을 내릴 수 있다. 판사 개인의 성실성에만 기대어서는 안되고, 제도적으로 안착시켜야 한다. 법적 분쟁은 증가하고 있는데 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사법부를 불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은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한 장면.

JTBC의 법원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한 재판부의 인간미 넘치는 부장판사와 원리원칙에 충실한 우배석 판사, 정의감에 불타는 신참 좌배석 판사가 좋은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줄거리다. 작가가 현직 판사(서울중앙지법 문유석 부장판사)다 보니 법원의 현실을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묘사해 화제가 됐다. 여성 판사에 대한 성차별, 판사 금품 수수 사건, 법원행정처를 출세의 도구로 인식하는 판사들의 모습 등 사법부의 어두운 면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판사들 간의 로맨스 등 극적 요소도 가미되면서 최종회 전국 시청률이 5.3%(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전체를 꿰뚫는 흐름은 ‘젠더 감수성’이다. 그런데 제목에 ‘미스’라는 성차별적 뉘앙스의 용어가 들어간 건 왜일까. ‘미스 함무라비’는 잘못된 사회구조에 거세게 도전하는 주인공 신참 판사를 비난하는 드라마 속 누리꾼들이 붙인 별명이다. 작가가 이를 역설적으로 제목에 가져왔다. 주인공이 차별과 편견을 감내하며 여성스러움에 안주하는 ‘미스’도 아니고, 남성들에게 무자비하게 보복하는 ‘함무라비’도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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