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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국가인권위원장에 최영애 서울시 인권위원장이 내정됐다. 최 내정자는 한국 최초의 성폭력 전담 상담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설립을 주도하는 등 여성 인권 신장에 힘써왔고 인권위 사무총장과 상임위원을 지냈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추천위의 공모·심사를 거쳐 내정된 첫 사례다. 최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절차를 거쳐 임명되면 첫 여성 국가인권위원장이 된다. 역대 인권위원장은 모두 남성 법조인이거나 법학자였다. 최초의 여성·시민운동가 출신 인권위원장 내정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가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시절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여성 인권위원장이라고 여성만을 강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 전반적인 인권과 민주적 절차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 취지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성폭력특별법 제정 추진위원장과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 공동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반(反)성폭력 운동을 주도해온 인사를 내정하며 굳이 그런 설명까지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올해 초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이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된 터다.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요구하고, 임신중단 합법화(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성평등 문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지 가름할 중대 이슈로 부상했다. 청와대는 사회 일각의 백래시(반격·역풍)에 주춤할 게 아니라, 여성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개선에 보다 과감하고 단호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2001년 출범한 인권위는 사형제와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에 대한 권고·의견표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인권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위상이 급락했다.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에서 2004년 A등급을 받았던 한국 인권위는 2014~2015년 세 차례나 등급보류 결정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용산참사 등 심대한 인권침해 사안을 외면하고, 공권력의 반인권적 행태를 옹호한 결과였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권위원장의 대통령 특별보고를 부활하는 등 인권위 위상 강화를 지시한 바 있다. 인권위가 새로운 위원장 내정을 계기로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 지킴이’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국회와 정부도 인권위 위상이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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