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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배신과 심판

opinionX 2015. 6. 26. 21:00
배신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역사 인물이 스승 예수를 은돈 30닢에 팔아먹은 가룟 유다나 자신을 총애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다. 단테의 <신곡>에도 이들은 지옥의 맨 밑바닥에서 타락천사 루시퍼에게 처참하게 물어뜯기는 벌을 받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단테는 지옥 세계를 9단계로 나누고 아래로 갈수록 중한 벌을 받는 것으로 묘사했다. 배신자는 가장 중죄인을 가두는 맨 아래 제9지옥에 배치했다.

제9지옥은 다시 4개 구역으로 나뉜다. 혈족을 배신한 자를 수용한 카이나, 조국을 팔아먹은 자를 가둔 안테노라, 친구를 배신한 자를 위한 톨로메아, 마지막으로 은인을 판 자가 가는 주데카다. 카이나는 성경에서 동생을 죽인 카인, 주데카는 유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배신자 중에서도 은인에 대한 배신이 가장 용서하지 못할 죄로서 브루투스와 유다가 거기에 해당하는 셈이다.

사람이 혈족이나 조국, 친구, 은인 등을 배신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 게 역사요, 인간사다. 사람이 개를 좋아하는 이유가 배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다. 사람의 배신에는 명분과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브루투스는 “나는 카이사르를 사랑하지만 로마를 더 사랑한다”며 카이사르를 찔렀다. 유다의 배신도 그로 인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메시아의 인류 구원이 완성된다는 의미가 있다. 배신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내부 고발과 같은 공적 이익을 위한 의로운 행동이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히며 정치권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_경향DB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당선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이라며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배신한 대상이 누구인지 모호하다. 박 대통령인지, 국민인지 분명하지 않다. 국민의 심판을 요구한 것을 보니 국민인 듯하다. 그렇다면 공약을 번번이 어기고 있는 박 대통령 자신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 원내대표가 누굴 배신했든 그 명분이나 의미가 무엇인지도 아리송하다.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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