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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보안손님

opinionX 2016. 12. 7. 11:33

미국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은 북한 테러범들이 백악관을 점거하는 내용이다. 혹평을 받은 영화지만 백악관을 초토화하고 미국 대통령을 인질로 잡는 초기 액션은 긴장감 넘친다. 테러범들의 백악관 침투는 내부자의 내통으로 가능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는 ‘세계대통령’의 집무실도 반역에 견디지 못한 것이다. 청와대를 무시로 드나든 최순실·차은택씨는 어떤가. 두 사람은 1주일에 서너 번씩, 때로는 늦은 밤에도 청와대를 출입했다고 한다. 당시 안봉근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비서관의 지시를 받은 행정관이 운전하는 청와대 차량을 이용했다. 최씨는 청와대에 들어와서도 식사를 차리라고 요구하고 음식 타박을 하는 등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고 한다.

이영석 대통령 경호실 차장은 두 사람이 “대통령 사생활과 관련된 ‘보안손님’으로 분류돼 있다”고 말했다. 안 전 비서관이 특별히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해 보안을 요구하는 명단을 경호실에 전달하면 검문검색 없이 청와대 본관에서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보안손님은 경호실 내부 용어다. 대통령 접견 인사 중 출입증 없이 별도 출입하는 인사를 뜻한다. 자연히 경호실은 이들의 신원은 물론 소지 장비마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지난 4년 가까이 대통령 경호에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갖는 지위와 역할, 책임을 감안하면 대통령 경호는 국가 안보 그 자체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좋아하는 라면조차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청와대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의 검식업무를 관장하는 경호실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라면 끓이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최고지도자 거처의 출입관리가 허술한 나라는 하나같이 기둥뿌리가 흔들렸다. 조선 고종 때 명성황후가 믿고 의지한 무녀 진령군은 매관매직하며 억만금을 주물렀다. 그는 대궐에 자유롭게 출입했지만 누구도 입을 방긋 못했다. 조선 명종 때 국정을 쥐고 흔든 정난정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대통령의 40년 지기 최순실과 수족 같은 청와대 인사들은 안전하지 않으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들이 쏟아지는 나라에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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