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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니 누군가 ‘빨갱이가 (지리)산에 숨어들었다고 빨치산이라 하는 건가요’라고 묻고 있다. 실소를 자아내지만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1946년 대구 폭동 이후 10년 이상 지리산에 숨어들어 유격전을 펼친 공산 빨치산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원·동지·당파 등을 뜻하는 프랑스 발음 ‘빠르티장’(partisan)에서 유래됐으니 공산게릴라만 콕 집어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후방에서 무장인민투쟁으로 침략자들을 무력화시키려고 조직된 부대와 구성원이다. 엄밀히 말해 미국독립전쟁 당시의 민병대와 러시아 내전 때의 적군 및 민중봉기 세력도 빨치산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2차대전 후 유고연방을 세운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전설적인 빨치산이었다. 티토는 80만명의 빨치산을 이끌고 유고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신출귀몰하며 나치 독일의 기계화 사단을 무력화시켰다. 티토가 빨치산 운동을 기념해 창단한 축구팀(FK 파르티잔 베오그라드)은 동유럽의 명문클럽이다. 유고연방은 깨졌지만 티토 빨치산의 흔적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빨치산 전법의 핵심은 ‘기동력’이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상대의 뒤통수를 쉼없이 잽싸게 치고 빠져야 한다. 1921년 고작 50여명의 당원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이 28년 만에 중국대륙을 석권한 것도 기동력을 핵심으로 한 ‘치고 빠지기’ 전법 덕분이었다. 막강한 전력의 일제 침략군과 국민당 정권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겠는가.

북한 김남희(오른쪽)와 한국 박희영이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여자부 대결 도중 쓰러진 지소연의 다리를 함께 붙잡고 경련을 풀어주고 있다. 북한이 허은별의 2골을 앞세워 2-1로 역전승했다.-경향DB


동아시안컵 축구대회에 출전한 북한의 남녀 축구대표팀도 ‘빨치산 전법’으로 무장했단다. 북한 감독은 동산서격(東散西擊·동쪽에서 흩어놓고 서쪽을 친다)이니 일행천리(一行千里·한 번에 천리를 간다)니 하는 제법 어려운 말로 설명했지만 실은 간단하다. ‘빠른 측면전환 후 크로스’(동산서격)와 ‘긴 패스 한 번으로 최전방에 건네주기(일행천리)’가 아닌가. 1983년 청소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한국대표팀에 외신들은 ‘벌떼작전(swarm tactics)을 폈다’고 했다. 빨치산축구나 벌떼축구나 기본은 ‘한 발자국 더’라 할 수 있다. 가뜩이나 부족한 실력에 그나마 뛰지도 않는다면 어찌되겠는가. ‘똥볼축구’ 소리나 들을 것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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