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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사모님

opinionX 2016. 6. 10. 13:00
사모님이란 말이 언제부터 부정적 의미로 사용됐는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이 말이 품격을 잃은 사례가 군에서 집중 발생했다는 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제1공수특전단장 시절 부대 체육대회에서 부인 이순자씨가 ‘부인 업고 100m 달리기’를 즉석 제안했다. 다들 언짢았지만 단장 부인의 말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경주에서 1등은 전 단장이 차지했다. 체력 좋은 부하들도 눈치보느라 앞서 달리지 못한 것이다. ‘남편이 사단장이면 부인은 군단장’이란 말처럼 위세부리는 장군의 아내 사례가 많지만 이씨의 갑질은 특급이었다. 부하장교 부인들과의 모임에서 “이 목걸이는 ○○연대 사모님이 준 건데 너무 예쁘다” “××연대 사모님이 준비한 저녁식사를 (전두환) 장군님이 너무 좋아했다”고 말하기 일쑤였다(신동아 보도). 이 말을 듣고도 뇌물을 바치지 않을 간 큰 부인이 있었을까. 군의 부조리가 이 단어의 의미를 퇴색시킨 셈이다.

사단장집 김치 담그는 데 연대장 부인들이 몰려가고, 연대장집 김치 담그는 날엔 대대장 부인들이 동원되는 군의 악습은 지금 옛말이 됐다. 그러나 진급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군의 사모님 갑질이 하루아침에 근절되기는 어려울 터다.

안상수 창원시장


군대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 경찰은 “서장의 무전기 호출 음어(암호)는 ‘미 하나’였는데 서장 부인은 ‘미 0.5’였다”고 토로했다. 경찰서장보다 그 부인의 서슬이 더 퍼렜던 것이다. 외교관 부인들의 상관집 김치 사역 동원도 잘 알려져 있다. 파티 여는 고위 외교관집에 불려가 허드렛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요즘에는 지방자치단체에 ‘도 넘은 사모님’들이 많은 것 같다. 안상수 경남 창원시장이 부인의 유럽출장 동반 비용을 창원시가 부담토록 하거나, 강인규 전남 나주시장의 부인이 시청 직원 2명을 전담비서처럼 사적 행사에 수행토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보다 못한 행정자치부가 지자체 배우자 지침서를 마련했다. 지자체장 부인이 사적으로 관용차를 사용하거나 인사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중앙정부가 지침까지 만들어야 할 정도로 지자체장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진 것이다. 이 나라는 정말 어디 하나 제대로 된 곳이 없는 건가.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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