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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수 존 바에즈와 배우 제인 폰다는 베트남 전쟁 당시 “아메리카의 양심”을 외치며 반전운동의 선봉에 섰다. ‘도나 도나’ ‘메리 해밀턴’ 등의 노래로 유명한 바에즈는 1961년 밥 딜런과 함께 인종차별 철폐운동을 벌이며 미국 사회의 모순에 눈떴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반전평화운동에 나선 그는 ‘요주의 인물’로 분류돼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바에즈는 “베트남 정권의 인권탄압을 막아야 한다”며 문화계 인사 83명의 서명을 받아 뉴욕타임스 등 5개 일간지에 의견광고를 실었다.

배우 문성근씨가 블랙리스트 의혹의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 18일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폰다는 영화 <클루트>(1971)와 <커밍 홈>(1978)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한 은막스타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 기간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해 ‘하노이 제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1980년대에는 원전건설 반대운동에 나섰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는 “사담 후세인보다 더 무서운 게 미국의 패권주의”라고 비판했다. 미국 언론은 바에즈와 폰다를 ‘좌파그룹 연예인’으로 지칭했다.

한국에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활동에 나서는 대중예술인을 ‘소셜테이너’로 부른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을 촉구했던 배우 김여진씨, 재능기부 모임을 만들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자녀들을 도운 가수 박혜경씨, 진보적 정치인들과 순회공연을 했던 방송인 김제동씨가 소셜테이너의 원조 격이다. 배우 문성근·권해효씨, 방송인 김미화씨, 가수 이승환·이은미씨도 기득권 세력의 외압에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소셜테이너들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에 ‘좌파연예인 대응 TF’를 만들어 이들을 탄압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배우 김규리씨는 영화와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다. 김제동·김미화씨는 진행하던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받았다. 심지어 국정원은 문성근씨와 김여진씨의 누드 사진을 합성해 온라인에 유포하기도 했다. 소셜테이너에게 좌와 우는 중요하지 않다. 그른 것을 비판하는 최소한의 상식을 추구할 뿐이다. 이를 모르고 소셜테이너들을 옥죈 이명박 정부의 수준이 어떤지 요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문성근씨의 말마따나 저열한 ‘일베’ 수준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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