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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은 시선(詩仙)이다. 신선은 인간 세상에 무심하다. 아래는 ‘월하독작(月下獨酌)’의 일부다.

“꽃밭 가운데서 한 병 술을/ 친한 이 없이 홀로 마신다/ 술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고/ 그림자 바라보니 셋이 되었다.”

이백은 술을 마신다. 술벗은 달과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이백의 독작은 외롭다기보다는 고즈넉하다. 이런 시를 읽으면 여럿이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도주해 고요한 가을밤 옥상에 올라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맥주라도 한 캔 따고 싶다.

이백은 관직에 나갔으나, 나라나 가문이 아니라 개인의 명예를 위하는 마음이 컸다. 현종 황제 역시 이백을 실무에 능한 관료가 아니라 음풍농월하는 도사에 가깝게 대우했다. 장안에서도 이백은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시를 지어 올리라는 명을 받았을 때 양쪽의 부축을 받고서야 붓을 드는 일이 잦았다. 결국 천자는 속세에 어울리지 않는 이백에게 “산으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이백은 그렇게 평생 떠돌며 살았다. 반란에 연루돼 투옥됐다가 유형을 떠나기도 했는데, 1개월이면 도착할 길을 1년이나 걸려 유유자적했다. 유형이라기보다는 여행이었다. 여러 차례 아내를 맞았지만, 가족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지는 않은 것 같다. 배 위에서 술을 마시다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와중에 익사했다는 전설도 이백다운 최후다.

두보는 시성(詩聖)이다. 성인은 세상의 고통을 제 한몸으로 끌어안는다. 아래는 ‘등악양루(登岳陽樓)’의 일부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편지 한 통 없으니/ 늙고 병든 내게는 외로운 배 한 척 있을 뿐/ 관산의 북쪽에는 전쟁이 한창이니/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흩뿌린다.”

늙고 병든 두보는 외롭다. 잔혹무도한 전쟁의 불길은 세상의 인연을 모두 불태웠다. 제 아무리 시를 잘 지어도 전쟁 앞에선 무력하게 눈물 흘릴 뿐이다. 두보의 시는 그렇게 눈물이 많다. 고향 생각하면서 울고, 늙고 지친 처지 생각하면서 울고, 멀리 떨어진 가족 생각하면서 운다. 잔혹한 세상에 가장 크게 슬퍼하는 것은 공감능력이 탁월한 성인의 몫이다.

두보는 첩을 두지 않고 평생 아내와 해로했다. 큰아들은 어린 시절 아사했다. 당시 관행과 달리 벼슬을 받아 세상에 나아갈 때에도 아내, 어린 아이들과 동행했다. 두보는 평생 고질병을 앓았다. 폐결핵과 신경통에 시달렸고, 말년에는 중풍까지 맞았다. 마을 관료가 내려준 쇠고기를 허겁지겁 먹다가 급체해 그날로 세상을 떴다는 전설은 두보의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백은 두보보다 열 살 연상이었다. 둘은 만난 적이 있고, 술에 취해 한 이불을 덮고 잘 정도로 금세 친해졌다. 한자 문화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시인 둘이 한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 놀랍거니와, 둘이 시인의 두 가지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롭다. 거칠게 표현하면 이백은 로맨티스트, 두보는 리얼리스트였다. 이백이 호방하게 풍류를 노래하며 탈속의 경지로 다가섰다면, 두보는 세상의 모순과 비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인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되, 때로 초인간의 경지를 엿본다. 고대의 영매가 산문으로 세상의 비의를 전했을 리 없다. 시인은 그렇게 탈속적이면서 세속적인 존재다.

최근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이 세간의 입길에 올랐다. 월세 계약 만기를 맞이한 그는 한 고급호텔에 홍보의 대가로 1년간의 숙박을 타진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시인은 지난해에는 자신이 연소득 1300만원 미만의 무주택자이며 생활보호 대상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갑질’ 프레임으로 최 시인의 제안을 비난했다. 과연 ‘생활보호 대상자’가 우리 사회에서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보통 사람의 생활감각으로 볼 때 최 시인의 제안이 기묘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웬만한 사람은 최 시인과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땅에 발 딛고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다. 민주사회에서 특정 직업군에 특권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가장 도발적이고 과감하게 상상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시인이다. 그 생각과 행동이 법을 어기거나 공동체에 결정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말릴 이유가 없다. 최 시인의 제안은 엉뚱하게 들릴지언정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호텔이 시인의 거주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면 받아들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거부하면 그만이다.

최 시인의 주거 문제는 집주인이 월세 계약을 연장해주기로 하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고 한다. 최 시인이 이번의 세속적 경험을 탈속적 언어로 풀어내줄 날을 그린다. 안정된 주거 환경에서 비범한 언어를 벼려내주길 바란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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