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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교육

[여적]시험지 유출

opinionX 2022. 7. 28. 09:42
 
시험지 유출이 있었던 광주 서구 대동고. 연합뉴스

 

차술차작(借述借作). 남의 답안을 베끼는 것이다. 수종협책(隨從挾冊)은 시험장에 책을 몰래 가져가는 일이고, 입문유린(入門蹂躪)은 대리시험이다. 정권분답(呈卷粉遝)은 답안지 바꿔치기이고, 외장서입(外場書入)은 시험장 밖에서 답안지를 던져주는 것이다. 1818년 조선 순조 때 성균관 학자 이형하가 상소문을 올려 지적한 ‘과거팔폐’(科擧八弊·과거시험의 8가지 폐단) 중 5가지다. 나머지 셋은 수법이 한 수 위다. 시험 문제를 미리 유출시키는 혁제공행(赫蹄公行), 매수한 사람을 시험장 경비원으로 바꿔 놓는 이졸환면출입(吏卒換面出入), 답안을 아무렇게나 써내고도 조작으로 합격하는 자축자의환롱(字軸恣意幻弄) 등이다. 옛날부터 단순한 커닝을 넘어선 시험 부정행위가 다양하게 존재했다.

고려 때 시작된 과거시험의 부정행위는 응시자가 많아지고 관리가 소홀해진 조선 중·후기 들어 극심해졌다. 무슨 수를 쓰든 합격만 하면 출세길이 열린다는 생각으로 탈법·위법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부정으로 일어난 형사 사건을 가리켜 ‘과옥’(科獄)이라 하는데, 기묘과옥이 특히 유명하다. 1699년(숙종 25년) 기묘과옥은 답안지를 바꿔치기하거나 가짜 감독관을 세운 50명이 추방 등 중벌을 받고 그해 시험이 무효 처리된 대형 사건이었다.

1992년 1월 경기 부천의 서울신학대에서 발생한 후기 대입 학력고사 문제지 도난 사건은 근래 가장 파장이 컸던 시험지 유출 사고였다. 후기대 입시 전날 대학에서 보관하던 문제지 중 교시별로 한 부씩 사라졌다. 이 사건으로 각 대학 시험지가 회수·폐기되고 1월22일 예정이던 학력고사가 2월10일로 연기되며 입시 일정이 모두 밀리는 대혼란이 빚어졌다. 당시 교육부 장관은 경질됐다.

최근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2명이 교사 컴퓨터에 악성코드를 심어 기말고사 시험지와 답안지를 빼냈다. 시험지를 빼돌리는 방법으로 급기야 해킹까지 등장한 것이다. 학교 시험지 유출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성적 올릴 욕심과 입시 부담이 어처구니없는 범죄로 이어지는 현실이 씁쓸하다. 그래도, 시험지를 미리 넘보는 건 자신과 사회를 속이는 일임을 새겨야 한다.

 

차준철 논설위원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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