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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쓰이는 영어, 즉 콩글리시의 대표선수가 파이팅(fighting)이다. 핸드폰(cell phone)과 더불어 이제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까지 이 말을 따라 쓴다. 영어의 동사 ‘fight(싸우다)’의 명사형인 이 말에는 응원이나 격려한다는 의미가 없다. 한국인들이 쓰는 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뜻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은 ‘고(Go·가자!)’다. ‘한국, 파이팅’은 ‘Korea, Fighting’이 아니라 ‘Go, Korea’라고 해야 맞다.

표준국어대사전도 ‘파이팅’을 등재하면서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라고 소개한 뒤 ‘힘내자로 순화한다’고 부연하고 있다. 싸운다는 뜻만 들어 있는 만큼 외국인, 특히 영어를 쓰는 상대팀에 적대감을 심어준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게다가 결혼식장은 물론 찬송가를 부를 때도 파이팅을 외친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전의를 불태우는 한국은 ‘전사의 나라’인가? 국립국어원이 ‘아자’라고 했다 다시 ‘힘내자’로 순화했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이번 대회의 구호를 ‘아리아리’로 정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에게 “새롭게 미래를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는 순우리말”이라고 소개한 뒤 아리아리를 제창했다. 아리아리는 평생 우리 민중의 정서를 담은 말을 찾아내 복원하고 있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수십년 동안 써온 말이다. 백 소장은 ‘길이 없으면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을 것이면 길을 내자’는 말로 아리아리의 뜻을 푼다. 백 소장은 모임 끝자락에 “쳐라쳐라 이어차~” “질라라비 훨~훨~”과 함께 아리아리를 불림(구호)으로 외치는데, 그때마다 좌중의 흥이 파도처럼 일어난다. 아리랑의 고장 강원도 정선의 작은영화관 이름에도 ‘아리아리’가 붙어 있다. 이만하면 ‘파이팅’인지 ‘화이팅’인지도 헷갈리는 외래어를 대체할 만하지 않은가. 

30년 만에 한반도에서 다시 한번 인류의 제전이 펼쳐진다. 남북이 한반도 깃발 아래에서 함께 아리랑을 부르고 아리아리를 목청껏 외치는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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