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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탈출한 이후에도 싸움이 그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인류의 먼 조상으로 동물에 가까웠던 구 인류뿐 아니라 현생 인류도 폭력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들도 관용을 몰랐다.

인간은 왜 싸우는가. 토머스 홉스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보았다. 따라서 강제적인 수단으로 국가가 내부 평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홉스는 호모사피엔스의 본성이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반면 장 자크 루소는 인간 자연상태가 평화롭고 조화로웠으나 점차 인구가 성장하고 사유재산, 계급분화가 나타나면서 전쟁과 각종 병폐가 출현했다고 했다. 따라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그러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 둘은 시계추처럼 시대에 따라 한쪽이 설득력을 얻었다가 다시 잃기를 반복하고 있다.

최근 현존하는 수렵채집인이나 과거 서구인이 관찰한 수렵채집인들에 대한 연구, 선사시대 수렵채집인들의 생활에 대한 발견, 그리고 진화론을 바탕으로 고찰한 한 연구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인간의 자연상태가 루소가 말했던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치열한 생존경쟁의 싸움터였다는 것이다. 아자 가트는 <문명과 전쟁>에서 “인간의 자연상태는 동물사회와 다를 것이 없는 투쟁이 지배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렸다”고 결론지었다. 인류에게 평화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본성을 억제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도시국가 간 전쟁에 지친 이들은 평화를 찾을 방안을 모색했다. 올림픽은 안전을 희구하는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국가 엘리스의 왕 이피토스는 전쟁과 전염병까지 액운이 휩쓸자 신에게서 신탁을 받았다.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해마다 제전을 열어 우정을 두텁게 하라’는 신탁을 받아든 그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경기를 다시 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주변국과 조약을 맺었다. 올림피아는 성지이며 여기에 무력으로 발을 들여놓는 자는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올림피아 휴전기간 중에 엘리스의 영토에서는 어느 누구도 몸에 무기를 지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경기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그리스 본토와 해외지역의 모든 도시국가에 전령이 파견되었다. 신성한 휴전기간이 선포되었고 모든 그리스 시민들은 올림피아에 초대되었다. 이 기간 동안 자유로운 여행이 보장됐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피아 제전뿐만 아니라 유사한 제전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열렸다. 델피의 파티아 제전, 아르골리스의 네미아 제전, 코린트의 이스트미아 제전 등이 4년 또는 2년 주기로 열렸다. 물론 제전이 열리는 시기는 휴전기간이었다.

올림피아 제전은 도시국가 간 맺은 동맹과 조약을 다른 도시국가에 공표하는 기회로 이용되기도 했다. 아테네와 아르고스 등은 올림피아 축제를 이용해 동맹조약을 기념하는 청동기둥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휴전기간에 다른 도시국가를 공격했을 경우에는 올림피아 법에 따른 처벌이 뒤따랐다. 벌금은 물론 올림피아 제전에 참여도 불허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노력의 산물인 올림피아 제전의 전통은 오랫동안 끊어졌다.

수천 년간 사람들은 타자를 잠재적인 적으로 여기고 자신을 공격해 올 것에 대비하는 방어기제를 발달시켜왔다. 상대방이 적의가 있든 없든 두려움, 의심,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때론 그 의심은 선제공격으로 이어졌다. 안보딜레마라는 악순환의 늪으로 빠져든 것이다. 전쟁은 자기충족적인 예언이 되고 전쟁의 공포가 전쟁을 낳는 파국의 연속이었다. 19세기 말 올림픽 부활의 논의가 있었고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올림픽은 세계인들이 함께하는 축제이며 평화의 제전이다. 하지만 그동안 두 번의 세계대전이 있었고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9일 개막한다. 남한과 북한, 미국 일본과 중국 러시아, 진보와 보수 간 셈법이 다르다. 북한의 참가를 두고 평화를 위한 한 걸음이라는 평가와 ‘위장 평화’와 ‘시간 벌기’라는 시선이 교차한다.

그리스인들이 올림피아 제전으로 평화를 찾았다고 하는 것은 신화이자 미신이다. 올림피아 제전이 전쟁을 막지 못했다. 그들은 평화조약을 맺고 파기하고 또 맺었다. 그들은 전쟁의 와중에 올림피아 제전을 열면서 평화를 모색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평화를 향한 노력이다. 싸움 유전자를 가진 호모사피엔스에게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길 기원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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