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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종일관 스피디하고 격렬한 몸싸움이 전개되는 ‘긴박한 재미’에 빨려들었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남북 단일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펼치는 첫 경기, 그 현장이 그랬다.

사실 아이스하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출전 선수가 몇 명인지도 몰랐다. 외국 영화에서 본 게 전부였다.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이 “아주 재미있다”며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라고 권했다. 정 회장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그동안의 방침을 바꿔 한국 남녀 대표팀에 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주는 결단을 내리도록 만든 일등공신이다.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단일팀 구성 논란이 우리 사회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래저래 경기를 직접 보고 싶었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여자 단일팀의 평가전이 펼쳐진 인천 선학국제빙상장을 이틀 연속 찾은 이유이다.

단일팀의 평가전 상대는 세계랭킹 5위의 스웨덴이었다. 파워·스피드·테크닉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였다. 그러나 단일팀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관중들은 단일팀이 초반 2골을 연속 내주자 “괜찮아, 괜찮아”를 연호하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주장 박종아가 멋지게 첫 골을 성공시키자 3000여명의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 박수로 감격의 순간을 함께했다.

비록 경기는 1-3으로 패했지만, 2~3피리어드를 무실점으로 버티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경기 후 전문가와 언론의 반응도 남북 선수가 첫 합동훈련으로 손발을 맞춘 지 일주일밖에 안된 점을 감안하면, 경기력과 팀워크가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세라 머리 감독도 “북한 선수들이 우리 시스템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면서 “지난해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린 경기를 했지만, 오늘은 괜찮았다”며 만족해했다고 한다.

가장 신선하게 느꼈던 장면은 아이스하키는 출전 엔트리 전원이 2~3분 간격으로 무제한으로 선수를 교체한다는 점이었다. 체력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대개 주전 선수가 경기를 풀로 뛰는 축구·농구·배구 등 다른 종목과 크게 다른 점이었다. 단일팀 구성으로 한국 선수의 출전 시간이 다소 줄겠지만, 평창 올림픽 본선에서 최소 5경기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언론 보도가 맞다고 생각되었다. 남과 북의 젊은 선수들이 첫 만남부터 보여준 훈훈함과 ‘원팀(One team)’이 되기 위한 노력들도 경기장에 그대로 묻어났다.

공정성 논란으로 상처를 입은 선수들을 생각해서라도 단일팀이 꼭 성공적인 결말을 맺었으면 한다. 다행히 단일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고조되면서 국내 첫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이 창단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이는 선수들의 오랜 꿈이자 ‘절실함’ 그 자체다. 단일팀이 성공해야 올림픽 이후 창단 작업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단일팀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불참, 러시아 선수들의 개별적 참가로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취재 열기도 엄청나다. 지난 4일 단일팀 평가전은 만원 관중을 넘어 통로까지 서 있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루 전날 열린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보다 훨씬 큰 열기를 뿜어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은 한반도의 불안감을 완화시키고, 올림픽 기간만큼은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전 세계에 보내는 등대와도 같다. 또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상쇄하고 한국 경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손실을 보는 것을 막아주는 경제적 이득으로도 연결된다. 단기적으로는 평창 올림픽의 흥행과 성공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문제 해결과 북방 경제의 활로를 뚫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우리는 주요 국제대회 때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단일팀 구성을 공들여 추진해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군 출신이 주도한 보수정권이었지만, ‘남북 분산 개최’라는 파격적인 안까지 북한에 제시하기도 했다. 남북 단일팀은 30년 전의 그 이유와 지금의 이유가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평창 올림픽 아이스하키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단일팀의 선전을 기대한다.

<임종인 | 변호사·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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