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고용노동부가 여성 이주노동자 고용사업장 504곳을 대상으로 다음달 27일까지 성폭력 피해 실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 차원에서 여성 이주노동자의 성폭력 피해 실태를 점검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노동부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성폭력에 노출됐는지를 집중 점검해 법규 위반 사업장에 대해서는 엄정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4월 경기 화성시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문모씨는 태국 국적의 여성 이주노동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1월에는 경기 안성의 공장에서 일하던 태국 출신 20대 여성 이주노동자가 50대 남성의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다 살해됐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는 농촌지역에서 더욱 심각하다. 올해 1월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은 농장주에게 수차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의정부노동청에 제출했다. 농촌지역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는데도 신고는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2016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농촌지역 여성 이주노동자의 12.4%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지만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10% 미만에 그쳤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겪고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것은 ‘고용허가제’가 족쇄로 작용한 탓이 크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의 승인을 얻은 이주노동자에 한해 3년간 최대 3차례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성폭력을 당해도 가해자가 사업주이거나 동료인 경우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말이 서툴고 국내 법을 잘 모르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 구제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성범죄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는 엄벌에 처하고, 이주노동자 고용 허가도 취소해야 마땅하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종속되지 않도록 고용허가제를 개정하는 일이다. 더 이상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미투 운동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서는 안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