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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뇌물수수 및 횡령,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받은 지 닷새 만이다. 구속영장 청구는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범죄 혐의의 중대성에 비춰 당연한 귀결이다. 일각에선 전직 대통령(박근혜)이 이미 수감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불구속 수사론을 펴기도 했으나 가당치 않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대명제에 비춰볼 때 영장 청구는 불가피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만 하루에 가까운 21시간만에 조사를 마친 이명박(77) 전 대통령이 15일 오전 06시25분에 검찰청사를 나서며 차에 오르고 있다. 김기남 기자

검찰이 밝힌 구속영장 청구 사유는 크게 세 가지다. 개별 혐의 하나하나만으로도 구속수사가 필요할 만큼 사안이 중대하고, 이 전 대통령이 기초적 사실관계마저 부인해 증거인멸 우려가 높으며, 공범 상당수가 이미 구속된 만큼 형평성도 감안했다는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영장 청구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것으로 본다.

헌정사에서 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된 것은 다섯 번째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처럼 부정한 자금을 깨알같이 긁어모은 사례는 드물다. 그는 사업자등록만 하지 않았을 뿐 청와대에 사실상의 ‘가족기업’을 차려놓고 전방위로 ‘비즈니스’를 벌였다. 나랏돈(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7억여원은 물론이려니와 삼성전자,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 대보그룹, ‘뉴욕제과’로 유명한 ABC상사 등으로부터도 돈을 챙겼다. 개신교 장로 신분으로 불교계 인사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까지 포착됐다고 한다. 뇌물의 반대급부도 ‘정찰제’로 비칠 만큼 노골적이었다. 원포인트 특별사면은 60억원, 금융지주 회장직은 22억여원, 비례대표 공천은 4억원, 관급공사 수주 편의는 5억원, 민주평통 간부직은 2억원에 ‘팔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전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았다”(2007년 8월)고 했고, 취임 후에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2011년 9월)이라고 자평했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후안무치)는 말이 이보다 더 들어맞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게 될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헌법 제103조)해야 한다. 이 전 대통령은 진솔한 반성과 사죄를 해도 모자랄 터에 ‘정치보복’ 운운하거나 책임을 가족과 측근들에게 떠넘겨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법이 온정을 베풀 만한 어떠한 명분도 없다.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는 것은 참담한 일이나, 추상같은 단죄로 민주주의와 법치의 엄중함을 보이는 일이 더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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