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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용산기지 ‘광복’

opinionX 2018. 8. 16. 14:32

생전에 건축가 정기용은 용산 미군기지를 ‘서울의 배꼽’이라고 불렀다. 용산기지 북쪽 남산에 올라 보면 왜 ‘서울의 배꼽’인지를 단번에 실감할 수 있다. 독립된 나라에서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의 대규모 주둔지가 있는 경우는 세계사에 유일하다. 역설적으로, ‘금단의 땅’이었기에 개발독재의 개발 광풍에서 비켜서 녹색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올해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을 떠나 경기 평택기지로 이전하면서 용산기지 땅은 이제야 ‘광복’되었다.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의 땅”(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이 된 것이다.

114년 전, 러일전쟁을 앞둔 일본은 용산 일대에 수만명의 일본군이 주둔할 병영을 지었다. 한일의정서를 내세워 용산지역의 부지 300만평을 강제수용, 이 중 115만평을 군용지로 사용했다. 용산기지의 태생이다. 일본은 이곳에 조선주둔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설치하고 2만명의 병력을 주둔시켜 대륙 침탈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용산기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미육군총사령부가 남한에 군정을 선포하고 7사단 1만5000명이 용산에 진주하면서 일본군 병영을 접수했다. 용산기지에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내걸린 것이다. 한국전쟁 후에 다시 용산에 들어온 미군은 이후 주한미군사령부(1957년), 한미연합사령부(1978년)를 창설하면서 용산기지를 지배했다. 용산기지는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한국 국민이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사실상 ‘용산합중국’으로 존재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용산기지 반환’은 우여곡절을 거쳐 2017년 주한미군 병력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8군사령부가 평택기지로 이전하고,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도 평택기지로 옮기면서 완료 단계다. 용산기지 땅은 일제 강점, 전쟁과 냉전, 분단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공간이 정신을 지배한다. 114년 만에 ‘광복’된 용산은 실로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비로소 “침략과 지배, 전쟁과 고난의 역사를 과거로 보내고, 자주와 평화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공원”(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을 꿈꾸게 됐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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