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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오를 갖추고 절도 있게 발을 맞춰 행진하는 것은 군대의 기본이다. 그런 군대에 무질서한 행진이 허용되는 곳이 있다. 교량, 그중에서도 특히 케이블에 상판을 매단 현수교나 사장교 등이다. 교량은 고유의 미세한 진동이 있는데, 이 진동과 같은 사이클로 외부의 충격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 진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교량이 무너질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바로 ‘공명 현상’이다.

실제 1831년 영국 맨체스터 인근의 브로튼교를 500여명의 영국군이 발을 맞춰 행진하다 다리가 붕괴돼 20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났다. 1940년에는 초속 60m 강풍에도 끄떡없게 설계됐다던 미국 워싱턴주의 타코마대교가 완공 4개월 만에 초속 19m 바람이 교량의 진동수와 결합되면서 무너졌다. 이처럼 튼튼한 교량도 사소해 보이는 충격으로 무너질 수 있는데, 부실시공까지 곁들여졌다면 그 위험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지난 14일 발생한 모란디 다리 붕괴 사고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구조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인데, 사망자가 40명을 넘어서고 있다. 아직 정확한 사고원인은 안 나왔지만 설계 결함과 부실 관리 가능성이 제기된다. 1967년 완공된 사장교인 이 다리는 2016년 대대적인 구조변경을 했다. 사고 당시에도 보수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강한 폭풍우까지 있었다 하니 공명 현상이 간접적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이탈리아 정부는 다리를 운영하는 민간업체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고 막대한 벌금 부과를 공언하는 등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란디 다리 붕괴는 1994년 10월21일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다리 상판이 무너지면서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다. 사고는 건설사의 부실시공과 정부의 부실한 감리·유지관리 등이 결합돼 발생했다. 국민들은 등굣길 학생들이 다수 포함된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분노했다. 이원종 서울시장이 사고 당일 경질됐고,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24년 전 한국 국민들이나 지금의 이탈리아 국민들 모두 이런 후진적 참사 앞에서 “이게 나라냐”라고 탄식할 만하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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