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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후 비서 김지은씨를 겨냥한 2차 가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요 포털사이트의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나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들을 보면 차마 지면에 그대로 옮기기 힘들 정도이다. 김씨의 폭로를 무고로 몰아붙이며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 전체를 폄훼하는 내용이 많다. ‘꽃뱀’ ‘첩’ ‘질투와 치정에 의한 복수극’ 운운하며 악담을 퍼붓고 김씨 외모를 비하하는 글도 상당수다. 명백한 2차 가해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는 앞서 겪은 성폭력 피해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싶어도 2차 가해가 두려워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지현 검사의 ‘안태근 성추행’ 고발로 미투 운동이 불붙은 이후 2차 가해는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다. 특히 김지은씨는 지난 3월 방송에 출연해 “안 전 지사에게서 4차례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한 직후부터 인격살해에 가까운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의 학력·나이·결혼 여부 등 신상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미투로 가장한 정치공작’ 식의 근거 없는 루머도 확산됐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안 전 지사 측은 평소 김씨의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그를 깎아내렸다. 김씨 측 변호인이 재판부에 소송지휘권을 엄중히 행사해달라고 요구했을 정도다. 일부 언론도 안 전 지사 측 증인들의 발언을 여과 없이 인용해 선정적 보도를 쏟아냈다. 급기야 김씨의 개인진료기록이 언론에 흘러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성단체들은 재판 과정 자체가 ‘위력 행사’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걸고 폭력과 억압을 폭로했다면, 공동체는 일단 그의 외침을 경청하는 것이 옳다. 명확한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다툼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차원을 넘어서서 폭로자의 입을 틀어막고 고립시키려는 행태는 곤란하다. 이번에 안 전 지사에게 내려진 무죄 판결은 확정 판결이 아니다. 상급심에서 달라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김씨에 대한 과도한 비난 공세는 미투 운동의 동력을 위축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미투 이후 도도히 전개돼온 한국 사회의 ‘반(反)성폭력’ 흐름을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용납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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