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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는 한국인이 먹은 지 오래됐다. 선사시대 울산 반구대암각화에 고래 무리가 그려져 있고, 경상도에선 제사상에도 올랐다. 지금은 울산(장생포)과 포항(구룡포)의 명물이다. 수육·육회·구이·전·탕으로 먹는 고래고기는 지방이 많은 꼬리 살이 가장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대체로 혀에 남는 맛은 쫄깃함, 느끼함, 고소함이다.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밍크고래는 소매가 8000만원, ㎏당 15만원선에 팔린다.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는 1986년 세계적으로 포획을 금지했다. 한국에서도 조사·연구 목적의 포획에 국한하고, 혼획(그물에 걸려 죽거나 좌초·표류)한 고래만 해경에 신고한 뒤 수협을 통해 유통·해체·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값비싼 고래도 ‘합법고기’와 ‘불법고기’로 갈라지는 셈이다.

2016년 4월 장생포 고래시장이 떠들썩해졌다. 울산경찰청이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유통한 4명을 사법처리한 지 한 달 만에 울산지검 검사가 고래고기 압수품 27t 중 21t(30억원 상당)을 업자에게 되돌려준 일이 벌어졌다. “불법 구분이 어렵고, DNA 검사도 오래 걸린다”며 고래축제에서 팔 수 있게 ‘환부(還付)지휘서’를 내준 것이다.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부임한 것은 다음해 7월이다. 고래 압수품이 가짜 유통증명서로 환부된 사실을 뒤늦게 안 경찰은 반발했고, 환경단체는 검사를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 앞서 고래연구소는 환부된 고기가 불법이라는 유전자 분석을 내놨고, 업자의 변호사가 울산지검 검사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이 변호사를 겨눈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여러 차례 기각했다. 전관·향검(鄕檢)·환경 문제가 뒤엉킨 고래고기 사건이 검경의 수사권 충돌로 번진 격이다.

세상의 눈이 다시 울산 고래고기에 꽂혔다. 2018년 1월11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 2명이 울산에 간 이유를 두고서다. 환경단체가 고래고기 사건을 규명해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한 지 이틀째 된 날이었다. 작금의 진실 공방은 당시 울산시장 측근 비리를 보러갔는지, 고래고기 사건을 탐문했는지가 핵심이다.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오는 9일 황 청장이 출간하는 책 제목에도 고래가 나온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도 물음표 많은 미제로 남아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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